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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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단상

2019-12-26 (목)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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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 걱정 없는 사람 누구 인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구 인고/ 힘들지 않은 사람 누구 인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잠시 잠깐 다니러 온 이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다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 무얼 그렇게 고민 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미움도 고통도 다 한 순간이오/...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 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일 뿐인데/ 묶어둔다고 그냥 있겠소/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 뿐!/...훤한 대낮이 있으면 깜깜한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 게 있겠소/ 살다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다마는/ 잠시 대역 연기하는 것일 뿐!/ 뭐 그리 원망하고 분노하고 할 일이 있겠소/ 내 인생 네 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이상은 서산대사의 유명한 해탈시로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를 깨닫게 하는 시 전문 중 일부다. 한해동안 정신없이 달려오다 보니 벌써 연말이다. 이맘때만 되면 웬지 마음 한구석 허전하고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나이 한해 더 먹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것은 무엇 하나 제대로 흡족하게 느껴질 만한 일을 해 놓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맘때만 되면 나는 과연 이 한해를 어떻게 보냈는가 되돌아보게 마련이다. 그러나 꼭 무얼 성취해야만 되는 것이 진정한 삶은 아니라고 본다. 서산대사의 시처럼 우리는 이 땅에 와서 잠시 머물다 가는 인생이다. 그럴 진데 우리가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며,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평생 살 것처럼 재물 모으기에만 너무 열중하며 산 것은 아닌지...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언젠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게 마련이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도 절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겠다고 으리으리한 아방궁을 짓고 신하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고 까지 했으나 결국 죽었다. 그는 어떤 상태에서도 변질되지 않는 수은을 넣어 만든 환약을 먹었지만 수은중독으로 목숨을 잃었다. 책 4,000권을 쓴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명망있는 철학자 뒤디모스나 1,000권의 책을 쓴 유명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죽었다. 어느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생이다.


연말은 우리 인생으로 보자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시기나 마찬가지다. 이때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우리가 평생 살 것 같이 살면서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는 했는가 하는 점이다. 남은 생을 잘 살아 마무리도 의미있게 잘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모두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는 날까지는 하루를 살아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인생을 의미있게 마무리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소중한 시간이다.

새해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연말, 이민 온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30-40년이 훌쩍 지나 머리는 희끗희끗, 주름살투성이의 황혼기가 되었다. 이제 남은 날과 시간들이 더욱 소중할 뿐이다. 되찾을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그렇다면 하찮은 일이나 생각에 매달리지 말고 마지막을 잘 마무리할 일이 남았다. 그리스 최고의 극작가 소포클레스의 말처럼 단 하루라도 인간적인 모든 것을 멸망시킬 수도 다시 소생시킬 수도 있는 시간이다.

얼마 남지 않은 한해의 마지막. 고생하며 지낸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수고했다” 자신과 가까이 지내온 지인들에게 “고마웠다”는 말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훈훈하게 말미를 장식하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다. 주변에 어렵거나 외로운 사람을 찾아보는 것 또한 연말을 훈훈하게 보내는 방법이다. ‘일모도원(日暮途遠)’-날은 점점 지는데 갈 길은 멀다, 해는 점점 기우는데 할 일은 많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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