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과 영국

2019-12-20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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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미국과 영국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 정치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국과 미국처럼 같은 언어를 쓰는 민족들은 사고방식, 가치관, 행동의 패턴, 그리고 세계관이 거의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영국과 미국은 표면적으로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외교적 행보를 보일 때가 있으나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방향과 목표가 같거나 아주 비슷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영국과 아르젠틴이 포클랜드라는 섬을 놓고 전쟁할 때,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같은 아메리카에 있는 아르젠틴 보다 대서양 건너편에 있는 영국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영국이 원하는 무기를 무제한 제공한 것이 영미 특수관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한 예일 것 이다. 결국 이것은 미국과 영국은 같은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고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지난 12일 영국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12월에 총선거를 치루었다. 유럽연합(EU) 탈퇴를 최단시일에 매듭짓겠다는 보리스 존슨 수상의 보수당이 지나치게 좌경 사회주의로 기울어지는 노동당에 압승하여 영국의 탈퇴(Brexit)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2016년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가 통과된 후, 영국의 국론은 분열되었고, 3년이란 세월을 허송하며 이리저리 표류하는 동안 세 명의 수상이 바뀌었고, 정부에서 제출한 유럽연합 탈퇴 세칙법안은 모조리 의회에서 부결되었다. 의회안에 산적한 민생법안도 이런 정치적 소용 돌이 속에서 모두 실종되었다. 국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뽑아놓은 의회가 자기 당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끝없는 정쟁을 계속할 때, 피해를 보는 것은 바로 그 들을 선출한 국민들 이다. 이들의 분노가 이번 선거의 결과였던 것이다.


영국 선거 결과가 확정된 다음날 12월13일 나는 뉴욕타임스를 흩어보다가 로저 코헨이 쓴 칼럼을 유심히 읽었다. 제목이 우선 자극적이었다:“보리스 존슨과 다가오는 2020년 트럼프의 승리”(Boris Johnson and the Coming Trump Victory in 2020). 트럼프를 반대하는 극좌에 속하는 코헨의 입장이 명쾌하게드러난 칼럼이었지만, 이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3년 동안 미국 의회도 트럼프를 끌어내리는 것에만 온통 신경을 썼지 민생을 위한 입법은 완전 실종된 것이 사실이다.

3년 동안 민주당이 한 일은 트럼프를 흠집내기에 전력을 기울인 것 밖에는 없어보인다. 국내외에 산적한 문제들이 그들의 눈에 보였는지 의심이 간다.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스무명 가까운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표를 의식해 극좌경의 사회주의 정책으로 민주당을 안에서 분열 시키고,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행로를 걷고 있다. 하원에서 탄핵을 해도 상원이 이를 거부할 것이 불을 보듯이 뻔한 일인데(明若觀火), 이를 끝까지 밀고가는 어리석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시간과 국민세금의 낭비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3년 동안이나 영국에서 벌어진 일들이 지금 미국에서 3년 동안 똑같이 일어나는 사태를 아마도 로저코헨은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와 연계시켜 걱정하는 듯하다.

영국에서 일어난 일이 미국에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反面敎師(반면교사)라는 말이 생각난다. 他山之石(타산지석)이란 말도 머릿속에 맴돈다. 배울 것은 싫어도 배우고, 자신들을 의회에 선출한 국민들의 진정한 바램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상생의 원칙이다.

법의 이름으로 혹은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 무수한 비극들을 차분히 앉아서 명상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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