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을 살면서 행복한 순간

2019-12-19 (목)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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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세밑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팔순의 나이를 맞고 또 한 해를 보내며 과연 나는 행복한 삶을 살았을까 조용히 자문해 보는 시간을 갖었다. 왜냐 하면, 김동길 교수의 말을 빌리면, “팔십을 넘기고 보니 눈만 깜박하면 하루가 갑니다. 눈을 깜박이는 순간을 일순 (一瞬) 이라고 하는데 눈을 몇 번 깜박이니 아흔이 넘었다.”고 갈파… 그래서 평소 놀랄 일이 없는 데 깜짝 놀랐다. 아, 내가 팔순이 아니고 팔십을 넘기고 있으니…

필자는 젊어서 한때 에밀리 디킨슨의 ‘If I can stop one heart from breaking, I shall not live in vain.’을 애송했었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 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라.” 이 시구(詩句)가 오랜 기간 동안 가슴 속 깊숙히 꽂혔었다.
1974년부터 국제봉사단체를 비롯해서 지역사회에도 이바지하는 대열에 참여했었고 삼십여년 간을 주위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미력이나마 손을 잡아주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아이러니칼한 것은 디킨슨 시인은 외부와의 접촉을 않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디킨슨은 평생 독신으로 아버지와 함께 기거를 하면서 바깥 출입을 안 한 거로 알려져 있는데 말년을 은둔자로 보내며 시를 하루에 한 편씩 쓰는 유별나게 감수성이 풍부했던 여류시인이다. 그녀는 자연을 사랑했으며 뉴잉글랜드 시골의 새, 동물, 식물, 계절의 변화 등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총 1,775편의 시를 썼으면서도 수줍음 많았고,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았으며, 또 세상에 알려지지도 않았던 이 시골 여성이 19세기최고의 미국 시들을 창조해냈다는 사실은, 그녀의 시가 재발견된 1950년대 이래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또 다른 그녀의 시, My mind to me a Kingdom is’를 쓰고 홀로 읊어가며 얼마나 행복해 했을까 생각해 보니 실로 외부와 차단된 생활을 하면서도 행복한 순간, 순간을 음미하며 살았을 것이다.

어제 지인 한 분이 저녁 시간에 만날 수 있겠냐고 전화를 주셨다. 한 세상을 살면서 수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살고 있지만 만나서 할 얘기가 있고 또 만나고 싶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처럼 행복한 일 이 또 있을 까 하는 생각을 순간적으로 갖게 되었다. 지인이던 친구이던, 어찌 사람의 마음을 금력이나 권력으로 살 수 있을 까 하는 걸 생각 해 본적이 없다는 여성이 바로 Emily Dickison 이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분의 마음 속에 내가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한 순간, 아니 행복한 삶을 사는 게 아닐까 한다.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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