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음 크리스마스

2019-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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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크리스마스는 누추한 마구간에서 시작되었다. 여관들은 만삭의 임산부 마리아를 거리로 내몰았고, 한데서 태어난 아기를 축하한 것은 몇몇 목동들과 ‘동방박사’라고 불리는 소수의 외국인들이었다. 그리고 이 아기는 폭군 네로의 위협을 받고 멀리 이집트로 피난하여야 하였다. 이 외로운 아기의 이름이 예수이다. 박수도 환성도 없고 짐승들의 낮은 울음소리만 고요 속에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것은 진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이었다.

예수의 생애도 외로운 것이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기 찾은 곳은 어떤 곳이었나? 예수는 로마의 앞잡이이며 세무소장인 삭개오의 집에 계셨고, 여섯 남자를 편력하여 손가락질을 받던 창녀의 집에 계셨으며, ‘군대’라고 불리는 귀신에게 사로잡힌 미치광이가 있는 공동묘지를 방문하셨다.

어리석은 민중이 권력자들에게 선동되어 망치를 들고 아우성치는 감람산에 계셨고, 억울한 재판정과 사형수의 언덕 골고다에 계셨다. 예수가 찾은 곳은 고향 나사렛에서 푸대접 받고, 소수의 제자들은 위험이 닥치자 모두 도망쳤다.


예수가 가신 곳은 굶주린 민중이 있는 광야였고, 38년동안이나 일어서지 못하는 신체장애자가 누워있던 베데스다 연못에 계셨으며 풍랑 속에서 제자들이 구원을 청하는 갈릴리 바다에 계셨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 상은 중세기 유럽이 만들어낸 금관을 쓴 예수는 결코 아니었다.
예수는 언제나 인간해방이 필요한 곳에 나타난 해방자였다. 육신이 질병과 악령(惡靈)에게 사로잡힌 자들을 풀어 주시며, 고독한 노인과 율법(律法)에 갇힌 자들을 해방하시고, 죄책에 신음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가르쳐 주셨다.

예수는 인종적으로 차별 받던 사마리아인을 높이시고, 세상에서 저주 받던 강도에게 천국을 약속하셨다. 어린 아이들을 귀중히 여기시고 천대받던 세리(稅吏)와 고기잡이 노동자들을 제자로 삼으셨다.

그런 해방자 예수가 아세아 한 끝에 붙어있는 조선에 오셔서 새로운 교육, 새로운 의학, 새로운 문화와 민주주의 등, 한반도를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예수는 전 세계를 뒤집어 놓은 해방자의 대명사이다.

일본 기독교 박해사에 ‘후미에’라는 것이 있다. 나무판자에 예수 상을 그려놓고 신자라고 생각되어 체포당한 사람들에게 그 예수상을 밟고 지나가게 하였다. 밟은 자는 살려주고 안 밟은 자는 곧장 처형하였다.

시험을 기다리는 신자들은 밤새도록 발에서 피가 날 정도로 닦으며 “예수님을 밟겠으니 용서하여 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서 예수님은 신자들에게 많이 밟혔다. 그러나 예수는 무척 만족하며 밟혔을 것이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몸도 마음도 지친 병실에도, 사업에 실패한 허탈한 창가에도, 힌숨 속에 겨울을 지내는 허탈한 실직자의 문턱에도 크리스마스는 다가오고 있다.
아기 예수가 누웠던 구유가 당신이 되면 어떻겠는가!

최효섭(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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