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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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

2019-12-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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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몸이 불편하고 어두운 생각과 두려움이 일어났다. 잠도 편히 잘 수 없었다.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 고요한 상태에 머물고 싶었다. 이 생각들이 어디에서 오는가? 왜 이런 감정이 일어나는가? 생각을 비우고 놓아버리는 수행이 부족한 것이다. 그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에 마음이 오염된 결과다.

이 경험은 ‘괴로움과 고의 원인과 고의 소멸(열반) 그리고 고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을 설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감케 했다. 우리에게 행복은 고에서 자유스러운 것이다. 집착하는 마음의 욕망에서 일어난 생각은 마음을 오염시키고 고를 일어나게 한다.

중국의 7조억 재산을 가진 조폭이 사형당하기 전에 했다는 작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다. 그는 다시 한 번 인생을 산다면 조그만 가게에서 일하며 가족과 단란하게 살고 싶다고 했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즐거움과 같은 소박한 행복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선방에서 정진할 때 기억들이 수없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그 때에 의외의 일은 한가로이 숲을 바라보던 때가 행복으로 깊이 인식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애써서 얻고 싶었던 자극적인 순간들은 오히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 경험은 나에게 조폭의 소박한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이해하게 했다. 한가로웠다는 것은 고(번뇌, 욕망)가 없었다는 것이고 생각이 쉬어진 고요와 평화는 더 깊은 마음의 상태다. 그 때에 자연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소박하지만 그 때의 행복이 더 깊은 것이다. 이런 경험과 이해는 욕망의 번뇌가 사라진 열반이 참다운 행복이라는 가르침을 생각케 한다.

번뇌(욕망에서 일어나는 생각)가 사라진 자유와 행복(열반)에 이른 성자를 ‘아라한’이라 한다. 7살 소년이 출가했다. 간단한 가르침을 듣고 스승이 머리를 깎는 동안에 아라한이 되었다. 얼마 뒤에 스승은 어린 제자(사미)를 데리고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떠났다. 여행 도중 어느 마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스승이 자는 옆에서 사미는 밤새 좌선을 했다. 아침에 일찍 깨어난 스승은 종려나무 부채를 쥐고 침상에서 일어나다가 부채의 손잡이 끝으로 사미의 눈을 찔렀다. 사미는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고 한쪽 눈을 가리고 스승을 시중했다. 스승은 한 손으로 어른에게 물건을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꾸짖었다.

이 때 사미는 자기가 눈 하나를 잃었다고 스승에게 말씀드렸다. 스승은 이 진실한 어린 아라한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를 알고 부끄러움과 고통을 느끼며 제자에게 거듭 사과했다. 그러나 사미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다만 업의 결과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하며 스승을 위로했다.

스승은 이 일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라한은 어느 누구에게든 화내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는 감각을 잘 다스려 완전히 고요하고 평등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은 삶의 행, 불행에 동요가 없는 참 행복, 즉 열반을 향해서 나아가는 과정의 것이다. 그러나 작은 행복들을 통해서 우리는 근본적인 행복(열반)을 생각할 수 있다.

원공 스님(한마음선원 뉴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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