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예일대로 봉사 가던 날

2019-11-08 (금) 줄리아 김/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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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푸르른 가을 하늘아래 비춘 아침 햇살이 나뭇잎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어느새 나뭇잎들은 노랗게 옷을 갈아 입어 가을동화 속 배경이 되고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단아하게 가을을 속삭여 주고 있었다.

커네티컷주 뉴헤이븐에는 아이비리그에 속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졸업했다는 유서 깊은 명문대 예일대학교가 있다. 뉴욕에서 가긴엔 두어 시간이 넘지만 길이 뻥 뚫린 토요일이라 마음도 여유로웠다. 어쩌면 늘 반복되는 바쁜 일상에서 망중한을 갖기 위해 하루 만이라도 의미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더우기 명문대학을 가보는 건 의미있는 일이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봉사’를 하고 싶어도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듯하다. 나도 그랬었다.
하지만 U.S 산악회 정태호 회장님이 1999년부터 시작한 한국서 미국으로 입양 해 온 아이들에게 우리만의 문화를 잊지 않도록 도와 주기 위해 예일대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에 나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됐고 우리 일원들은 한국 음식들과 전통놀이들을 보여주기 위해 일 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봉사할 수 있게 된 건 참 의미있는 일이었다. 초창기에 8년 남짓 봉사를 해왔지만 바쁜 현실에 치여 잊고 있었던 일, 오랜 만에 다시 봉사하러 간다니 몹시 설랬다.


예일 대학에 도착하니 가을 햇살아래 물든 황금빛 나무들이 대학 캠퍼스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 주는 듯 참 좋았다. 지성과 낭만이 있는 캠퍼스에서 가을 햇살아래 걸어다니는 재학생들을 보니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중년이 된 지금와서 더욱 느끼게 됐다.

이곳 예일대학에서 관심 있는 봉사자들과 한인 학생들이 만들어낸 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온 미국 부모님, 외소하고 외거풀의 눈을 가진 아이들은 큰 눈을 가진 미국 양부모들과 불협화음처럼 보이지만 한국음식과 문화를 접하려고 온 양부모님들이 주는 사랑과 관심 하나만으로도 입양한 아이들은 잘 자랄 것 같았다. 인간에게 사랑의 굶주림이란 얼마나 큰 고통인지… 그런 고통에서 그들을 구해준 부모들이기에 고개가 숙여진다.

미국 부모님들이 한국 음식과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건 자식으로 키우겠다는 마음 뿐아니라 그 아이가 태어난 한국인이라는 뿌리조차 인정해 주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사랑으로 대하면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이고 싶을 것이고 그들의 문화를 기억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님의 마음일 것이다. 부모의 자격이란 그건 것이다. 내 아이를 헤아려줄 줄 아는 마음인 것이다. 여러 모로 느끼는게 많았다.

오래 전엔 아주 간난아기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엔 제법 큰 아이들이다. 그때 그 아이들도 많이 컸을거다. 오래 전 봉사할 때 어린 아이가 코를 흘리며 미국인 아빠를 쳐다보니 얼른 코를 닦아 주고 나서는 안아서 빙빙 돌리며 아이를 웃게 만든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친부모도 자식을 버리는 세상에 양부모로 그들 곁에서 아이를 지켜주겠다고 품어 안은 인간적인 모습이 가장 아름답고 감동스러웠다.

어쩌면 입양아이들이 지금 미국인 양부모를 만난 것도 그들에게 실오라기라도 붙잡을 만한 그들만의 복으로 이루어진 신이 주신 끈 같은 것은 아니었는지… 그들이 사회적으로 낙오되지 않게, 건강한 정신과 마음으로 잘 자랄 수 있게, 그들이 자라면서 내가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게,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관심 속에서 잘 자라도록 기도할 뿐이다.

<줄리아 김/ 자영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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