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플로리다로 거주지 바꿔

2019-11-08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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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맨하탄에 나갈 때가 있다. 5애비뉴 N지하철역에 내려 커피를 사자면 가장 가까운 곳이 트럼프 타워 안 2층에 있는 스타벅스다. 한달 전에도 그곳에 커피를 사러 갔었다.

68층 주상복합건물인 트럼프 타워를 둘러싸고 한 블록이 콘크리트 바리케이드가 쳐있고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정문 앞에는 경비견을 거느린 무장 경찰이 지킨다. 안에 들어서면 입구에서 가방은 스캐너를 통과하는 보안검사를 거쳐야 한다. 2층에 올라 커피를 사면서 아래 로비를 내려다보았다. 거대한 성조기가 내려진 아래 무장한 경찰들이 떼를 지어 오피스와 주거용 엘리베이터, 상가 등 온통 황금빛으로 번쩍번쩍하는 건물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사진촬영을 하고 싶을 정도로 희극적이자 비극적이었다.

아마 트럼프가 이곳에 머물 때는 헬리콥터를 타고 옥상에 내려 펜트하우스 66층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지난 9월말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로 주 거주지(Primary residence) 를 옮겼다고 뉴욕타임스가 10월30일 보도했다.


이로 인해 트럼프는 뉴욕주 소득세 최고세율 9%와 뉴욕시 최고세율 4%를 각각 면할 수 있다고 한다.

플로리다는 주 차원의 소득세나 상속세가 없으므로 절세를 하려는 미 북동부지역 재력가들이 이곳에 거주지를 옮기곤 하는 곳이다. 최근 납세자료 제출 소송전에 휘말린 트럼프는 뉴욕시장을 비롯 정치인들이 자신을 나쁘게 대접한다며 화를 냈고 세금문제로 주 거주지를 옮겼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트럼프는 지난 6월18일 역대대선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플로리다에서 2020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했었다. 첫 대선 도전이었던 2015년 6월16일에는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출마선언을 한 바 있지만.

1946년 뉴욕 퀸즈 지역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부동산업을 뉴욕에서 키워 성공하고 제45대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주소지를 옮겼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 그랬다면 국민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대통령을 탄핵시키려 했을 것이다.

조세 피난처로 그 유명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케이만 군도, 바하마, 버뮤다, 뉴칼레도니아 등 작은 섬나라가 각광받는다, 이들 조세회피지는 세금이 면제되거나 현저하게 경감되는 국가나 지역으로 특정 기업들이 이곳에 페이퍼 컴퍼니를 설립하고 자금을 돈세탁하면서 합법적으로 조세를 회피하거나 불법적으로 탈세를 하곤 한다.

미국 정부측에 의하면 기업들이 영업이익과 이윤을 조세 피난처로 돌려 신고하지 않은 세금이 보통 1년에 7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적한다는데, 그 돈이라면 서민들의 조세 부담이 크게 줄고 사회보장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안정될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아예 세금 때문이라고 드러내놓고 파리에서 런던으로 이사 간 인기연예인도 있다. 파리에서 소득세, 사회보장세, 부유세를 내다가 런던으로 가니 소득세와 국민보험료만 내게 되어 엄청난 절세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기업인도 아니고 연예인도 아니고, 절세를 위해 주소지를, 그것도 일국의 대통령이 그랬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국민이 선출한, 미국의 얼굴인 대통령이 평생 살아온 고향을 떠나 타향으로 주소지를 옮긴 이유가 절세라니, 과연 트럼프답다 하는 말밖에 안나온다.

한편, 자녀교육을 위해 퀸즈의 좋은 학군에 사는 친지집으로 주소지를 옮긴 이, 보험료 절약을 위해 뉴저지 친척집 주소를 임시 사용하는 이, 자영업 자이거나 캐시 잡으로 집안에 캐시 뭉치를 두고 살지만 공짜 돈과 메디케이드 받는 이들, 학교나 교육국에 걸릴 까, 연방국세청(IRS)에 걸릴까, 그동안 소시민 새가슴으로 노심초사하며 살았다고 하자.
앞으로는 “대통령도 그러는데 뭐” 하고, 법을 피한 어떤 편법도 ‘ 누구나 하는 일’이라 치부할까 두렵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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