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델피아는 내게 미국의 두 번째 도시이다. 30년 전 시애틀로 이민 와 거기 잠깐 머문 후 정착 차 건너간 곳이 필라델피아다. 정착의 이유는 공부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나의 진정한 미국경험의 첫 도성이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필’은 ‘love’, ‘아델피아’는 ‘형제’와 ‘세상’의 합성어), 그 도시인들은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그곳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거의가 다 그렇지 않다는 걸 금방 느낄 것이다. 생각보다 냉랭한 곳이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 역시 고생을 많이 한 곳은 별로 정이 안 가는데 내겐 필라델피아가 그런 곳이다. 미래가 불투명한 신학생 신분에, 내 돈 내고 갈비 한 번 사먹을 수 없을 만큼 힘든 경제적 형편 속에서 살았다. 그런 곳을 이번에 무려 25년 만에 정식으로 재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다니던 신학교가 주관해 연 목회자설교콘퍼런스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나 없는 사이 학교가 많이 변해있었다. 비좁은 파킹 장을 넓히려고 땅을 갈아엎는 중이었고, 그때의 교수들 중 딱 한 분만이 현직에 계실 뿐 다 물갈이가 되어 누가 누군지를 모르다 돌아왔다. 다만 내가 매일 공부하던 책상(석사 공부 이상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지정석)은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뭉클한 감회가 떠올라 사진을 찍어 현재 다른 학교 신학생인(그땐 베이비였는데!) 아들에게 즉각 전송했다. 아들은 예상대로 매우 형식적인 반응을 보였다. 세상에 내 뭉클함을 몰라주다니, 이 녀석이 말이지!
이번 콘퍼런스는 내가 존경하는 설교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를 기념하는 특별강좌였다. 그가 50년 전 이 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특강 주제는 “설교와 목사/Preaching and Preachers”였다. 내용이 탁월해 이를 책으로 냈는데 지금까지 무려 40쇄다. 난 웬만해선 책을 재독(再讀)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세 번이나 읽었다. 지금은 영어로 다시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50년 전 이 학교에서 그분이 이 위대한 강의를 했다. 정작 이 학교 다닐 땐 무감각했던 게 후회스러울 뿐이다. 설교자가 된 지금에서야 그 감흥을 되찾고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런 콘퍼런스에 오면 마냥 좋다. 참여하는 것 자체로 이미 복받치는 감격이 있다. 케빈 드 영을 비롯해, 총 네 명의 개혁주의 신학자와 설교자들이 강의했다. 그 내용의 절반은 로이드 존스의 설교와 책이 자신들에게 미친 영향과 관련된 증언들이다. 이런 내용들을 들을 때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것이다. 맞아, 난 지금 바른 길에 서 있는 거야! 영어에 “we are on the same page”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지향하고 있는 신학과 설교의 방향이 이 분들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데서 오는 자족적 감사랄까? 맞다, 난 지금 그들과 ‘같은 페이지’에 있는 거 맞다.
간 김에 반가운 지인들도 몇 만났다. 필라델피아에 먼저 와 혼자 있을 때 날 거둬준 친구 장로부부, 고생 끝에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그 지역의 한 신학교 교수가 된 동기, 필라델피아 그 학교에서 학위를 딴 후 한국 가 신학교 교수 하다 다시 돌아와 그곳에서 목회하고 있는 친구(이번에 만났을 땐 가슴 아픈 이유로 교회를 사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때 사역하던 교회에서 가르쳤던 신앙의 제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그간 못 본 사이에 다들 나처럼 늙어있었다. 아이들은 다 자라 제 갈 길을 가고 있었고, 그 중 몇은 이미 결혼도 했다. 살처럼 빠르게 흐르는 세월 앞에 경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외유 후엔 늘 후유증이 뒤따른다. 생체리듬이 잠시 길을 잃었기에 그걸 되찾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무엇보다도 목사로서의 고유사역의 질이 개선되어야 할 텐데, 이를 더 잘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엄습한다. 재충전하겠다며 다녀왔는데, 다녀온 후의 설교가 충전이 잘 안 된 설교라면 되겠는가? 하지만 그 동안의 목회경험을 통해 깨달은 건, 교회사역은 내 의욕이나 단회적인 프로그램 같은 걸로만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의욕보다는 겸손한 순종이 앞서야 한다. 이 정설이야말로 이번 콘퍼런스에서 내 정신을 둘둘 휘감았던 그들(로이드 존스 목사, 그리고 강사들)의 진정한 가르침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겸손과 순종으로 재무장하자. 간만의 나의 정신적 고향 필라델피아의 외유를 통해 얻은 열매,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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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숭 목사 /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