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벨상, 우리도 타자

2019-10-25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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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생리의학상, 8일 물리학상, 9일 화학상, 10일 노벨문학상 발표 등 매년 우리를 긴장시키는 10월 노벨상 시즌이 지나가고 있다.

먼저 문학상을 말해보자. 일본은 1968년 가와바다 야스나리, 1994년 오엔 겐자부로, 2017년 가즈오 이시구로(영국 국적), 그리도 다음 수상을 기다리는 막강한 후보 무라카미 하루키 등 수상자들이 여럿이다.

살아있을 적의 김동리를 비롯 현재의 황석영, 조정래, 한강, 이창래(미국적) 까지 일본작가들 못지않은 작가들이 많거늘 어찌 수상 근처에도 못가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10년이상 후보에 꾸준히 오르던 고은 시인은 미투 논란으로 이름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K팝 열풍을 주도하는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를 누비며 한글로 된 가사를 아미들과 열창을 하고 있는데 같은 한글로 된 문학은 왜이리 제자리걸음인 지.


작년에 미투 파문으로 노벨문학상이 선정되지 못했기에 작년과 올해 두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한꺼번에 발표됐다. 이중 오스트리아의 페터 한트케가 누구인가. 76년 창단된 극단 76이 수십년간 무대에 즐겨 올리는 희곡 ‘관객모독’의 작가이다. 1978년 신촌 시장통 소극장에서 초연을 한 ‘관객모독’은 의자 4개에 4인의 배우가 나와 90분내내 관객을 향해 상스런 욕을 하고 물을 뿌리는 등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한 무대다. 올 9월에도 극단 76은 사무엘 베게트의 ‘엔드게임’을 공연하는 등 올해로 43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새파란 20대 청년 기국서·기주봉 형제와 배우 정재진이 이제는 수염과 머리가 허연 노인층으로 무대를 꾸미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그때 본인도 꽃다운 청춘 20대였다. 대한민국 연극의 뿌리인 극단이 일으킨 작품 ‘관객모독’ 붐의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40년 전에 알던 작가라선지 반갑다.

다른 한 작가는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다. 노벨상에는 국력, 네트워크의 힘, 이런 요인도 작용한다는데 이 나라가 한국보다 국력이 강한가? 그런데 눈부신 발전을 이룬 IT 강국 한국은 왜 자꾸 노벨상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가.

우선 노벨문학상 후보가 되자면 5개국어 이상으로 번역된 작품. 그중 스웨덴어로 된 작품이 있어야 한다. 독재정권 저항 혹은 인류애가 스웨덴 한림원이 선호하는 주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역사는 독재정권과 함께 시작했으니 일단 되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작품 번역에 더욱 힘을 쏟아야겠다.

문학도 문학이지만 일본이 과학분야 24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는데 한국은 한명도 없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올해도 리튬이온 배터리 발전공로로 일본인 화학자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한국 과학의 미래를 짊어진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의 교수 및 연구진, 석·박사 출신 학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원(KIST)을 설립했고 연구중심 대학 KAIST는 1971년 개교하여 한국최초의 인공위성들과 로봇 휴보를 개발하여 2018년 평창올림픽 성화 봉송을 했다. 연구중심 학교로 창립되었으나 실용적 학문의 전통이 강하다보니 기초과학 분야는 약한 면이 없지 않다.

포항공과대학교(POSTECH)는 1986년 설립되어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중심 대학을 표방하며 인재를 끌어 들였다. 1977년 한국과학재단, 1996년 창의적 연구 진흥사업,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이 만들어졌으니 이왕 기다린 것 좀더 기다려보자.

일본 아베 수상의 수출규제 조치는 오히려 기회다. 연구소와 공장에서 원천시술을 개발하여 부품 소재를 직접 만들면 된다. 그동안 경제발전이 급하다보니 응용과학에 치중했지만 4차혁명을 뒷받침하는 기초과학에 더욱 치중하면 된다.

정체된 일본 젊은이들에 비해 요즘의 한국 젊은이들은 얼마나 패기만만하고 열정적인가. 이 젊은이들이 독창적인 주제로 자유롭게 연구에 매진할 때 머잖아 노벨상도 우수수 쏟아질 것이다. 노벨의 기일인 12월10일, 노벨상시상식이 치러지는데 부끄럽다고 고개 숙이지 말고 다음은 우리 차례라고 눈 크게 뜨고 지켜보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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