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기도

2019-10-25 (금) 최동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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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게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잠이 깨었다.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는 사물을 보려고 애쓰다 포기하고 눈을 감은 채 빗소리를 듣기로 한다. 심술궂은 바람은 빗방울들을 몰고 와 창문을 두드리고 달아났다. 규칙적이고, 때로는 불규칙적이기도 한 빗소리가 그대로 빗방울 교향곡이 된다. 그리고, 막연한 그리움 하나가 늘어진 현의 그 것과 닮은 소리를 내며 ‘툭’ 하고 떨어졌다.

아침은 밤새 일어난 일에 시치미를 뚝 떼고 맑게 밝아 있었다. 낡은 반복으로 부터 떠나기 참 좋은 날이라며, 아내는 Kent 라는 작은 마을에 가 보고 싶어 했다. 어느덧 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내의 마음은 여전히 30여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계절의 변화도 일상으로 여기며 무심하게 살아온 지난 날에 미안함이 앞섰다.

이 지역에 오래 살았음에도 Kent로 가는 길은 무척 낯설었다. 목적지를 따로 정하지 않았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지나는 길에 눈에 띄는 오래된 식당에서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길가에 있는 작은 앤틱 가게를 기웃거리며 모처럼 넉넉한 가을 오후를 보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이미 즐거웠다.


이름도 생소한 몇 개의 작은 타운을 지나고 고즈넉한 산길로 들어서자 마자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감탄사를 쏟아냈다.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온 가을은 이미 마을 구석구석을 붉게 물들이며 위풍당당했다. 산 속에 살면서 섬이 되었는지, 스스로 섬이 되고자 이런 산 속에 찾아 들어와 사는지 알 수 없었으나, 산 중턱에 섬처럼 떠있는 작은 외딴 집 앞 마당에도 가을은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

어느 시인은 사는 것이 섬이라고 했고, 섬을 바라보듯 살라고 했었다. 막막한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어쩌면 처음부터 희망이라는 것은 썰물에 가끔씩 떠오르는 섬 같은 거였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섬처럼 떠 있던 마을을 벗어났다. 그리고 한적한 산길을 달리는 동안 우리가 천천히 섬이 되었다.

마침내 State Park 에 도착했다. 밤새 비가 온 탓인지 산으로 오르는 길은 미끄러웠다. 앞서 가던 젊은 부부와 아이가 위태롭게 비틀 거리면서도 맑은 소리로 웃었다. 나무 사이로 언뜻 드러난 하늘은 푸르렀고, 아이의 웃음은 숲을 돌아 사람들의 입가로 전염되었다. 우리 뒤를 따라 오던 노인이 바위 위에 앉아 거친 숨을 고르다 말고 무언가를 들여다 보았다. 한참만에 나뭇가지로 지렁이를 집어 풀 섶으로 옮겨 놓으며 찡긋 웃는 노인의 눈에는 깊은 가을이 묻어 있었다.

가을은 가장 작은 것을 보게 했다. 가장 작은 것을 본다는 것은 내가 스스로 작아 졌을 때만 가능한 것이었다. 잠시 멈춰서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가을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낙엽이라는 이름으로 허공에서 벌이는 마지막 춤사위를 아름답게 기억하기로 한다. 문득, 붉게 타들어 가는 단풍을 보면서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는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자신을 내어준 나무에게로 돌아가는 여정이라 여기면서도 떠남을 떠올리면 왠지 먹먹해진다, 순환은 태생적으로 슬프나, 눈부신 햇살 만큼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사이, 가을 바람에 끈적이던 시간이 말라 버렸다.

오늘도 묵직한 잿빛 하늘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를 쏟아 낸다.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생각만으로도 쓸쓸하다. 하여, 이제는 남아서 기다리기로 한다. 풍경을 앞세우고 마음 가는 대로 두어 걸음 뒤쳐진 채 걸어도 좋겠다. 오늘은 기도하는 대신 나무 아래에 서서 하나씩 잎을 내려 놓는 나무의 기도에 귀를 기울인다. 속도 모르는 바람이 등을 떠 밀어도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에도 귀를 기울이는 시간, 가을이다.

<최동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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