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늙은 포도나무

2019-10-14 (월)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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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나무는 볼품은 없어도 수령은 길다. 150년 이상의 수령은 보통이다. 수령이 30년 미만의 포도나무는 청년기다. 혈기가 왕성하고 직선적이다. 열매의 향도 강하고 수확량도 많다. 50년 이상이면 중장년기이고, 80년이 넘으면 노년기로 접어든다. 이때부턴 열매의 크기가 작아지고 생산량도 줄어든다. 그렇다고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소출량은 미약해도 질적인 면에서는 다르다. 청년기에 거둔 열매와 비교할 수 없는 자기만의 고고한 향을 지닌 열매를 산출하기 시작한다.”

-김창만의 ‘포도나무 리더십’ 중에서

-포도나무가 늙으면 뿌리는 천천히 활동하고, 영양분을 적게 섭취한다. 이파리의 광합성 속도가 감속되면서 생장과 소출이 현저히 줄어든다. 늙은 포도나무는 젊은 포도나무처럼 혈기왕성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생산량을 감축하여 독특한 향이 농축된 자기만의 열매를 산출한다.


향의 깊이를 표현하는데 있어선 젊은 포도나무는 늙은 포도나무를 능가하지 못한다. 오랜 세월을 버티어 살아 온 늙은 포도나무의 내면 안에는 젊은 포도나무가 쉽게 따라오지 못하는 인내, 절제, 균형의 인격이 내밀히 숨 쉬고 있다.

“늙은 생강이 맵다”라는 중국 속담도 있다. ‘늙은 생강’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올곧게 견뎌 온 탓에 모양은 작고 볼품은 없다. 하지만 맛과 향기는 젊은 생강보다 더 진하다. 그 향이 사뭇 심오하고 깊어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82세에 완성했다. 윌리엄 듀랜트는 83세에 역사책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았다. 파블로 카잘스는 91세가 되어도 되어서도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이 연세에도 날마다 연습을 하시는 겁니까" 카잘스가 대답했다. "요즘도 실력이 조금씩 향상되기 때문이라네."

노년이 되어도 뇌세포의 가소성(可塑性-plasticity)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카잘스는 입증했다. 세네카(Seneca)는 갈파했다. "잘 사용하는 방법만 안다면 노년은 온통 신비스런 즐거움으로 가득 찬 새로운 세계다.“ 창의적 삶을 사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의욕과 열정이 좀처럼 식지 않는다.

<김창만/ 목사·AG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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