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 스칸달론과 익명성 깨기
2019-09-19 (목)
박상근 목사
모든 생명체는 필수 영양분을 자양분으로 자라난다. 한 순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존재는 없다. 놀랍게도 스칸달론도 자체 필수 영양분으로 인해 조심스럽게 자라난다. 그런 면에서 스칸달론도 하나의 생명체와 같은 속성을 가지고 있다. 스칸달론이 자라는데 반드시 필요한 영양분이 있다. 바로 익명성이다. 은밀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스칸달론의 익명성과 은밀함은 아주 사소한 접촉에서부터 시작한다. 첫 만남에서부터 부정한 관계를 맺어 스칸달론이 된다면 그것은 정신적으로 치유가 필요한 부분이다.
스칸달론은 어떻게 시작해서 그 치명적인 독성을 인간의 의식 속에 퍼뜨리는 것일까? 사소한 익명성이 반복되면서 그 은밀성의 농도가 깊어져 가는 것이 스칸달론의 보편적인 생명력이다.
첫 시작은 가벼운 대화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별 다방에서 커피 한잔으로 시작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어떤 계획적인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촉을 시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최근의 뉴스에서처럼 이미 상습적으로 스칸달론을 일으켰던 경우는 이미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여성도에게 접근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그저 대화를 하고 가볍게 차를 마시며 함께 있는 것으로 낭만을 느꼈을 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헌신적이고 뜨거운 소명감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계실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글 자체가 아주 무례한 것이라 생각되어 무척 송구스럽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마주한 현실에서는 심심찮게 답답한 현실을 목도하게 된다.
자기 교회의 젊은 여성도와 아주 멀리 떨어진 극장에 조조할인 영화를 함께 보러갔다가 문제가 되었던 목사님의 경우를 최근에 들었다. 그 목사님은 자신이 무슨 불륜을 저질렀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소리쳤다고 한다. 과연 그 논리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잘 모르겠다. 스칸달론의 치명적인 독성을 생각한다면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다. 왜 사모를 두고 그 목사님은 젊은 여성도와 조조 영화를 보러 갔을까?
만약 스칸달론이 진행 중인 경우라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그 은밀함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윗은 그 익명성 뒤에 숨어 1년이 넘는 세월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다윗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은 숨겨져 철저히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믿었을지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그에게는 회개도 없었고 반성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보다 어리석고 바보 같은 짓이 또 없었다. 그 스칸달론의 시간 동안 다윗은 행복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단이 날카롭게 비판했을 때 다윗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지 모른다. 그 동안 혼자서 그 스칸달론을 감추고 해결하느라고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스럽고 지쳤을까? 그러므로 자신의 익명성이 깨어지고 모든 불륜이 까발려졌을 때 오히려 마음은 자유를 얻었을 것이다. 자신의 스칸달론이 익명성이 지켜지는 한 돌이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간곡한 마음으로 제안한다. 자신을 둘러싼 스칸달론의 익명성을 지금 당장 깨뜨려라. 아직 시간이 있고 기회가 있을 때 깨뜨려야 살 길이 열린다. 천명 아니 만 명 중의 단 한 명의 목사님이라도 지금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 있다면 그 은밀성을 당장 깨뜨릴 것을 권하고 싶다. 자신이 스스로 깨뜨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어떻게 익명성을 깨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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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