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곧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것

2019-06-08 (토)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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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7년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 전쟁이 이처럼 참혹하리라 예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선 땅에서 침략자 일본군을 격퇴했지만 조선은 수많은 인재를 일본에 빼앗겼고, 수많은 문화재가 침탈당했고, 경작지를 비롯한 국토는 황폐해졌다. 그리고 조선을 지원했던 명나라는 결국 무너지게 되었다. 조선 지원에 신경을 쓰느라 북방의 맹주 여진족의 넘치는 힘을 관리하지 못하게 되자,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여진족은 수백 년 분열을 통일하고 후금을 세우고 마침내 중원 대륙의 주인이 되어 대청제국을 선언했다. 일본은 조선을 강탈하고 명을 정벌한다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조선의 수많은 인재를 포로로 데려갔고 조선의 문화재와 재산을 약탈해갔다.

초기 명이 조선 출병을 주저한 것은 조선이 그토록 빨리 무너지리라는 것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수나라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저력을 떠올렸고, 또 무적강군 몽골군을 막아내고 자치 왕권을 지킨 고려를 생각했을 때 불과 수개월 만에 섬나라 왜구들의 침략에 속절없이 무너질 조선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 사신들이 명에 원군을 요청하러 갔을 때 일본과 야합해서 명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먼저 의심했다고 한다. 그만큼 중원 대륙의 대제국도 한반도라는 조그마한 땅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을 무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조상들을 두었던 조선은 일본의 침공에 삽시간에 무너졌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200년 동안은 평화의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조선 지도부의 권력투쟁과 부정부패로 인해서 민생은 도탄에 빠졌다. 심지어 일본에 갔다 온 통신사들조차도 같은 현실을 서로 다르게 보고하는 바람에 조선 정부는 일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조선 정부도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1년 가까이 남해안 방어를 위해서 노력을 했지만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있던 유성룡은 전쟁을 걱정하여 임진왜란 2년전에 평소 인재로 여겼던 이순신을 6등급이나 올려서 전라좌수사로 보냈고, 권율과 이억기를 중용하여 전쟁에 대비했다. 전쟁이 없을 것이라 했던 같은 동인 출신의 김성일의 보고에도 그는 인재를 발굴하고 배치했다.

수나라의 침략에는 을지문덕 장군이 있었고, 당나라의 침략에는 양만춘 장군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의 침략에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다. 평화의 시기 임금이든 재상이든 누군가가 미래를 생각하고 이런 인재들을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했기에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2019년 우리는 지금 다인종 다민족으로 구성된 미국 속에서 가장 수가 적은 소수계로 살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그동안의 전통적인 정책과 노선을 벗어나 미국의 이익을 위한다고 하면서 전 세계에 풍랑을 일으키고 있다. 이 풍랑의 결과가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르지만 격변의 시기에는 늘 취약한 집단이 피해를 입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격변의 시기에 오히려 소수계를 포함하여 준비된 집단의 진출이 더 활발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소수다. 그렇기에 우리 커뮤니티의 미래를 위해서 일하는 인재들을 확보하고 키우는데 더욱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우리 커뮤니티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사랑하고, 가장 열심히 일하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키우지 않고서 미주 한인들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김동찬/ 시민참여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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