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가주 한인사찰들,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 봉행
부처님전에 헌화하는 대승사 보살.
안그래도 좁은 주차장이 아침부터 미어터졌다. 꽤 일찍 도착한 이들마저 동네 몇바퀴 돈 다음에야 겨우 자동차 시동을 끌 수 있었다. 신발장도 꽉 찼다. 법당 안에 빈자리가 있을 리 없었다. 가지런히 두 손을 모으고 선 이들, 두 눈을 감고 반듯이 앉은 이들, 그 틈새를 비집고 엉거주춤 삼배만 올리고 밖으로 물러나 서성이는 이들이 한둘 아니었다. 행사안내 도우미를 자청한 전 신도회장 신진휴 거사는 웃음 가득한 얼굴로 기자에게 귓속말을 던졌다.
“100명이야 100명!”
근래 드물게 일요법회와 맞아떨어져 12일 열린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샌프란시스코 여래사(주지 광전 스님)의 봉축법요식뿐만 아니었다. 길로이 대승사(주지 설두 스님)에도 약 100명이 모였다. 산호세 정원사(주지 지연 스님)에도 70명이 넘는 불자들이 함께했다. 새크라멘토 영화사(주지 동진 스님) 오클랜드 돈오사(주지 돈오 스님) 마리나 우리절(주지 운월 스님)에서도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참뜻을 되새기고 참된 불자의 삶을 다짐하는 봉축행사가 경건하게 펼쳐졌다.
카멜 삼보사(주지 대만 스님)와 SF정토회(총무 조영미)는 1주일 늦춰 오는 19일 각각 봉축법요식을 봉행한다. 리버모어 고성선원은 선원장 진월 스님의 유엔베삭절 행사 참석차 동남아 순방일정 때문에 지난 5일 미리 관불식과 연등법회를 봉행했다.
아일랜드계 머가완 거사 경건헌화.
조순애 보살의 사회로 열린 여래사 법요식에서 김석전 신도회장은 부처님 설법의 핵심 그대로 “참나를 바로 깨달으면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존중할 줄 아는 정토의 세상일 열릴 것”이라며 “모든 갈등을 넘어 하나의 세계로 이어지는 부처님오신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주지 광전 스님의 법문 차례. 법당을 가득 메운 ‘경사’ 때문에 청법의 예로 늘 해오던 삼배조차 할 수 없었다. 부득이 합장 반배로 대신했다. 그래도, 그래서 더욱, 스님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법고를 울리는 대승사 설두 스님.
“올해를 불기 2563년이라 하는데 그건 돌아가신 때부터 세는 것이고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그보다 80년 전입니다. 당시 인도사회는 카스트제도라 해서,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4성계급의 사회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자로 태어나셨지만 이 4성계급을 거부하셨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스님은 부처님이 “어떻게 하면 이 고통스런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천착해 당대의 6파철학의 대가들을 찾아 공부하는 등 6년 고행 끝에 깨달은 진리로 연결했다.
“모든 것은 고통뿐이다, 면밀히 관찰하면 연기하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므로 무아다, 무아이니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삶을 길에서 시작해 길에서 끝난 삶이라고 정리했다.
“태어나실 때도 길 가다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셨잖아요? 깨달음도 고행길에 보리수 아래서 얻으셨지요. 돌아가실 때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셨지요.”
스님은 우리가 부처님을 기리는 이유를 다시금 짚었다.
“부처님 가르침이 내 행복에 주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입니다. 고, 공, 무상, 무아, 무소유의 삶을 살도록 노력을 해라, 그런 자각을 해야 합니다. 즐거움을 추구한다, 뭐가 좋다 뭐가 좋다 해봐야 다 공입니다.”
곧 몸과 마음도 무상하다는 직설로 이어졌다.
“내 몸의 수억개 세포들도 다 변합니다. 10년 전 내 몸에 있었던 세포들 중에 지금 남아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마음도 어제 마음 오늘 마음 다르고 아침 마음 저녁 마음 다릅니다. 육신도 정신도 이러하니 너라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부질없는 것에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영원한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는 만해 한용운 선사의 대표작 앞에 붙은 서시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그리운) 것은 다 님이다...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느냐...”는 구절을, 특히 ‘이름 좋은 자유의 알뜰한 구속’을 반복하며 헛것의 족쇄에 얽매어 살지 않도록 신신당부했다.
법문 뒤 아기부처 탄생을 축하하는 케잌커팅 때는 생일축하 노래와 아리랑 노래를 함께 부르며 흥을 돋웠다. 봉축법요식은 불자들이 차례로 아기부처를 목욕시키는 관불의식과 부처님전 헌화로 마무리됐다.
산호세 지연 스님 법문경청 신도들.
줄이은 여래사 신도들의 관불의식.
임시법당 바깥 야외잔디밭에서 봉행된 대승사 봉축법요식은 삼귀의 반야심경 뒤 주지 설두 스님과 법은 스님이 최근 한국에서 들여온 법고를 울리며 피치를 높였다. 이어 찬불가, 어린이들의 꽃공양, 육법공양, 발원문 봉독, 한국에서 방문중인 일아 스님의 봉축사, 설두 스님 봉축법문, 관불식이 진행됐다. 점심공양 후 2부에서는 대승사의 새신랑 새신부 가족(신선호-김아림 커플/자비행 보살의 아들부부, 한형진 추진주 커플/한형연 거사 다행 보살의 아들부부)의 폐백 재현으로 뜨거운 축하를 받았다(관련사진 23일자에 게재).
새크라멘토 영화사 법요식 뒤 촬영.
대승사는 또한 컵등 만들기와 소원지 작성 등 프로그램을 소화한 뒤 저녁에 연등점화식을 했다. 정원사 지연 스님도 법당을 가득 메운 불자들에게 부처님오신날을 봉축하는 참뜻을 일러주며 참불자가 되자고 독려했다. 정원사 역시 연등점화식으로 부처님오신날을 밝혔다. 영화사 동진 스님과 신도들은 육법공양 관불의식 등 봉축법요식을 마친 뒤 한국에서 진행된 연등회 장관을 법당에서 프로젝터 스크린을 통해 함께 보며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거듭 되새겼다.
<
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