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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등] 진실은

2019-04-25 (목) 동진 스님/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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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세상엔,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집단이 있다. 둥글다는 측에서 보면 어이없다. 그런데 진실은 둥근 지구도 평평한 지구도 실지로 본 이가 없다는 거다. 물론, 지구 밖에서 바라본 이가 있다,고 하고, 지구 사진도 우리는 봤다, 하지만 그것을 개인적으로, 진실인지 확인할 길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구가 둥글다는 걸 당연히, 옳다고 여기게 됐을까?

옳고 그름, 즉 시비는 언제 어디서나 발생한다. 그러나 진실을 가리는 일은 그리 간단치 않다. 세상에서 날마다 보여지는 사건은 시인지 비인지 알 수도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 진실이란 것도 그 때의 상황, 환경, 사람, 인식, 힘... 등이 개입되게 되면, 전혀 다른 얼굴을 하게 된다. 절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한 집단이 사과를 먹었다 치자, 시다,라고 우기는 쪽이 악이든 선이든 그 무엇으로든, 그 그룹에서 어필이 된다면, 그 곳에서의 사과는 시다,가 된다. 끝내 달다,라고 외치는 이도 있고, 속으로만 혼자 달다,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시지도 달지도 않다고 여기는 이도 있지만, 사람들은 시다,를 진실로 믿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의 진실은 시다,도 달다,도 시지도 달지도 않다,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사과라는 이름뿐, 아무도 상대방의 사과 맛은 모른다. 그래서 진실은 없다. 없어서, 시비는 계속된다.

만약 어떤 것이 진실이면 그 자리엔 시비가 없다. 세상 중요하지 않은 일에 우리가 얼마나 시비를 하고 사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전상으로 진실은 거짓이 아니다, 이다. 거짓은? 진실이 아닌 것, 이다! 거짓이 없음 진실도 없다. 결국, 사전도 규명하지 못한 진실을 우리는 있다고 믿는다.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거, 실은 그것은 진실이 아니고 당신이 선택하고 믿은 것이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쪽이 심하게 우스우면, 그만큼 당신은 당신의 인식에 갇혀 있는 것이다. 당신이 틀렸다,가 아니고, 그것이 아상이고 중생상이고 ‘내’ 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믿기로 하였으므로, 지구가 둥글다. 거기서 더 나아가 옆에서 누군가 지구가 둥글지 않다고 우기면 화난다. 진실을 밝혀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상의 수많은 시시비비도 따지고 보면, 진실을 밝히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와 상관없어도, 진실만을 위해 목숨 거는 이는 없다. 진실이란 게 그런 것이다.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고 나면, 그 어떤 벽에도 갇히지 않는다. 지구가 둥글든 평평하든, 결국 당신은 당신이 원한 걸 선택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당신이 믿는 진실이 아쉽게도 세상 하나 뿐인 진실이 아닐 뿐이다.

당신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게 아니다. 삶 속의 너무 잦은 시시비비를 내려놓고, 마음을 좀 쉬자,는 얘기다. 에 나온다. ‘도에 이르는 건 어렵지 않다. 간택, 즉 시시비비를 혐오하면 된다’고. 오죽하면 혐오라는 단어를 썼겠는가. 시시비비를 초월해야 한다는 얘기다. 옳고 그름도 모르는 바보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다. 알되, 바깥 경계에 끄달리지 않는, 평안한 마음을 말한다. ‘외연제식’이다. 진실이란 것이, 단 한번도 뜨고 진적이 없는 해를, 뜨고 진다고 평생을 믿고, 말하고 산 것처럼, 그런 것임을 알면 되는 거다. 그러면 생각과 시비를 놓게 된다. 무언갈 손에 쥔 채는 다른 걸 잡을 수 없듯이, ‘나’를 놓지 않으면, 스스로가 벽에 갇혔다는 것을 영원히 모를 것이다.

<동진 스님/SAC 영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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