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상식이 통하는 정치

2019-03-15 (금)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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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와 김정은의 회담이 실패로 돌아갔다. 평양에서 하노이까지 먼 길을 기차를 타고 가는 미련한 자나, 또 그런 자와 마주앉아 회담을 하겠다는 트럼프나,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 다 아는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는 인물들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미국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형을 독살하고 고모부를 기관포로 살해한 무도한 자와 무슨 회담을 하겠다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도자가 꼭 성인(聖人)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다. 국가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지도력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결함이 있어도 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입장에 서 있다. 따라서 작은 잘못을 지나치게 파헤쳐서 사람의 인격과 평생 쌓아올린 업적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리는 언론이나 정치인들의 자세는 아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능력 있고 비전과 지도력을 겸비한 많은 인물들이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다이나믹스인 정치를 기피하는 주요인이 바로 소위 공개 검증이라는 “전자고문(Electronic Lynch)”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 일부 학생들이 그의 당선을 항의하는 데모대에 합류하기 위해 워싱턴에 갔다고 했다. 나는 학생들에게 트럼프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미국의 대통령 이미지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닐 수 있으나 적법한 절차를 거쳐서 당선된 정통성을 가진 대통령이라는 점을 주지시켰다. 그가 가진 비전통적 지도력과 비전이 이백년 넘게 성장하고 정착한 미국의 정치제도와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루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되겠지만, 국가의 장래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의 단점을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그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국정을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 이제는 두 달 하고도 두 해가 되었다. 때로는 참고 때로는 눈을 감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친구들에 맞서 트럼프를 변호한 나의 세월도 또한 그와 같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싱가포르에서 만나겠다고 선언한 그 날까지 나는 비전통적이지만 그의 지도력이라는 것을 믿으려고 많은 노력을 한 셈이다.

원래 나는 30년 넘게 민주당원이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지나치게 위선적인 사회복지정책으로 인한 국가부채와 극단적인 좌경화에 동의할 수 없어, 때로는 공화당 후보에게 투표를 한 적도 자주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선언한 그 날, 나는 그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어버렸다. 그렇다고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도 없어서 당적을 무소속 (In dependent)으로 바꾸어 버렸다.

김정은이라는 애송이로 대표되는 북한정권은 공산주의도 사회주의도 그들이 내세우는 인민 민주주의도 아닌 전제와 폭압과 구시대의 대물림 혈통을 마치 신처럼 떠받드는 뒤틀리고 부패한 권력의 실체이다.
종교적인 신격화와 조작된 이념과 폭력이 이상한 조합을 이루는 북한 사회 속에서, 통일과 민족이라는 허황한 구호는 북한 사람들의 인권을 아주 철저하게 유린하는 도구이자 김정은 일당을 보호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무수한 사람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도 핵무기를 개발해야할 만큼 절박한 김정은 일가의 생존본능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다.
또 이런 집단과 이런저런 이유를 앞세워 뒷거래를 하는 한국의 좌경정권도 이런 점에서 부도덕 하기는 마찬가지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부도덕과 폭력과 핵무기의 위협을 정당화하고 사실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김정은보다 조금도 나은 점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 아는 상식도 아닌 상식인데, 그것도 모르는 자들은 지도자의 자격도, 앞을 보고 국가를 이끌어가는 비전도 없는 무식하고 무책임한 자들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최소한의 상식이 있거나, 상식을 넘어서는 지혜와 비전을 가진 지도자가 몹시도 그리운 시절이다.

<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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