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인칼럼-스칸달론의 시작
2019-03-14 (목)
박상근 목사/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
시편 150편중에 73편이나 썼던 뛰어난 감성의 사람, 물맷돌 하나로 8척 거인을 쓰러뜨린 영적 거인, 수많은 성경의 위인들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유일하게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인정을 받았던 영성의 사람, 다윗!
그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어떻게 유부녀였던 밧세바와 간음하는 충격적인 패륜을 저질렀을까? 특히 밧세바는 자신을 대신해서 전쟁터에 나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던 충신 우리아의 아내가 아니었던가! 우리아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히타이트 족속이었는데도 다윗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다했다. 술이 취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본능만 남은 상황에서도 다윗에 대한 존경심으로 군인의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던 참 군인이었다.
그러나 다윗은 밧세바의 임신으로 자신의 범죄가 탄로 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고 충신 우리아와 여러 명의 군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죄를 더하였다. 신앙을 떠나서 인간적인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시간은 흘러 불륜의 씨앗이었던 아이가 태어났다. 이 사건은 성경에서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추악한 스칸달론이다.
아주 심각한 고민이 여기에서 등장한다. 그렇게 훌륭한 성경을 쓸 정도로 뛰어난 영성을 가진 다윗이 스칸달론을 시작할 때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었을까? 밧세바와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으니 1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다윗은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 안식일이 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것이고, 각 종 절기가 되어 하나님께 헌신해야 할 때 정성스럽게 헌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결코 회개하지 않았다. 우리아가 죽고 자신의 완전범죄에 만족했다. 그 기간 동안 다윗의 신앙은 어디로 갔을까? 왜, 선지자 나단이 비유를 통해 다윗의 범죄를 신랄하게 비판할 때까지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을까? 다윗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인가? 이제 다윗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다윗은 결코 하나님을 떠난 적이 없다. 하나님을 부정한 적도 없다. 심각한 스칸달론을 저지르면서도 여전히 거룩한 신앙인으로 살았다.
여기서 모든 신앙인들에게 주는 무서운 교훈이 있다. 스칸달론의 시작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대단한 영성과 탁월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언제든지 스칸달론의 늪에 빠질 수가 있다. 이렇게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도 빠질 수 있는 것이 스칸달론의 무서운 독성이라면, 어느 누구도 큰소리 칠 수 없다! 그러니 오고 오는 모든 세대에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등이다. 그것이 다윗의 불륜이 성경에 자세히 기록된 가장 중요한 목적이 아닐까?
목사와 스칸달론의 이해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무장되었다고 해도, 어느 누가 감히 다윗보다 영성이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아무리 탁월한 설교가라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는 다윗의 시를 능가할 수 있겠는가? 신앙의 깊이와 무게감에 있어서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탁월한 영적 거인인 다윗이 빠졌던 스칸달론의 위력이라면 우리 또한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언제든지 영적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하지 않겠는가?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또는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다가 스칸달론의 덫에 걸려든다면 너무나 큰 영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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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근 목사/새크라멘토 한인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