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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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2018-11-13 (화)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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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산다는 것은 만남의 연속이다. 수 많은 사람들을 경험한다. 그러다 보면 스쳐가는 인연을 만난다.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평생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도 한다. 만남은 삶, 그 자체인 셈이다. 우리가 살면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이유다.

살면서 모든 만남이 잘 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반려자와 동반자만이라도 잘 만나야 한다. 반려자는 짝이 되는 사람이다. 아내와 남편을 의미한다. 동반자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 바로 친구다. 이처럼 부부와 친구의 만남은 매우 중요하다. 반려자(배우자)는 평생의 동반자요, 친구는 인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흔히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들과 우의를 나누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다. 말과 마음이 통하고 허튼 소리도 허물 없이 나누며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가 있다면 삶은 즐겁고 행복하다. 반면 나이 들어 찾아오는 이 없고 찾아갈 곳도 없다면 사는 게 아니라 그저 살아 있는 것이다. 나이 먹어 친구도 없는 고독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뿐인 게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돈, 건강, 배우자 못지 않게 중요한 이유다.


인생길을 걷노라면 힘이들고 지칠때가 있다. 삶이 험난하여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있다. 이럴 때 속마음을 털어 놓거나 의지하고 싶은 친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요할 때의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힘들거나 아플 때 손을 내밀어 잡아주고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오는 그런 친구. 친구는 그런 존재다. 그래서 인생의 동반자다.

그렇지만 친구가 많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참된 친구도 거짓 친구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는 ‘숫자’보다는 ‘질’이 더욱 중요하다.

공자는 논어에서 친구 중 익자삼우(益者三友)와 손자삼우(損者三友)가 있다 했다. 익자삼우는 사귀어서 이로운 친구 셋이 있고, 손자삼우는 사귀어서 해로운 친구 셋이 있다는 뜻이다.

서로 사귀어 이롭고 보탬이 되는 친구로는 곧은 벗, 어진 벗, 지식이 많은 벗이다. 곧고 정직한 벗은 배울 게 있고 나를 바르게 해준다. 벗이 어질고 성실하면 나의 인격도야에 큰 도움이 된다. 친구가 많이 듣고 배워 지식이 풍부하면 나의 견문도 넓어지고 식견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손해가 되는 친구는 편벽된 벗으로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친구다. 선유의 벗이라 부드럽기는 하나 자기 의견은 없고 그저 나의 말에 동조하는 친구다. 벗 이면 때로는 반대나 충고도 해주어야 하거늘 그렇지 못하니 이롭지 않다. 편녕한 벗은 말은 번지르르하나 마음이 비뚤거나 아부를 잘하는 친구다. 편녕은 곧 간사스런 친구로서 나를 나쁜 길로 인도할 우려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손자삼우다.

공자는 좋아해서 유익한 세가지인 익자삼요(益者三樂)와 좋아해서 오히려 해로운 세가지인 손자삼요(損者三樂)도 말했다. 절도있게 좋아하는 것, 남의 장점 말하기를 좋아하는 것, 어진 벗을 많이 사귀는 것을 좋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유익한 세가지 좋아함이다. 즐겨서 해로운 세가지는 교만한 허세를 좋아하는 것, 하는 일 없이 놀기만 좋아하는 것, 분별 없는 향락에 빠지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즉, 도움이 되는 친구냐 해로운 친구냐의 구분은 대개 익자삼요와 손해삼요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살다보면 매일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다 친구가 될 순 없다. 때론 참된 친구인 줄 알았다가 낭패를 보고, 거짓친구라 멀리했다가 후회하는 일도 적지 않다. 참으로 좋은 친구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들은 유유상종이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인다. 그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이치다. 주변의 친구가 바로 나의 거울인 셈이다. 좋은 친구를 원하면 스스로가 먼저 참된 벗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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