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요 에세이] 그늘을 주는 나무처럼

2026-05-14 (목) 08:07:21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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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civil war) 시기에 군인들의 요새로 만들어진 훈련 장소였다는 베이사이드에 위치한 포트 토튼 공원(Fort Totten Park)을 갔다.
바다와 브롱스를 연결하는 다리가 보이는 군인들의 훈련장소를 제외하고 민간인들에게 개방된 공원이다.

아름드리 큰 나무들이 더욱 푸르르고 든든하게 그곳을 오랫동안 지킨 듯 강하게 버틴다.
역사가 깊은만큼 나무들이 크고 울창하고 오래 된 유적지도 볼 수 있어 걷기에도 좋은 곳이다.
쫓기던 삶에서 마음의 여백이 생기며 명상을 해도 좋을 만큼 고요해진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바오밥나무 사진은 가지가 위로 뻗은 모양이 뿌리가 하늘로 솟고 매우 두껍고 둥글어서 마치 물통처럼 보인다.
이 안에 많은 물을 저장해 많은 생명을 살리니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그로인해 가뭄을 견딘다고 한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제 몸을 비워 남의 생명을 지켜내는 모습은 어쩌면 인간이 배워야 할 지혜일지 모른다.
바오밥의 거꾸로 된 나무를 보면서 사람의 삶 또한 이와 닮아 있다고 느낀다. 세월을 견디며 몸속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는 가지 끝의 잎처럼 화려함을 자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삶의 본질은 겉이 아니라 속에 남는다는 걸 알아가며 버겁던 삶도 내려놓고 시간과 환경에 순응한다.
바오밥이 거대한 줄기 안에 생명의 물을 간직하듯, 사람도 세월 속에서 비로소 자신만의 깊이를 품게 된다.

어쩌면 위대함이란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뿌리를 잃지 않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오는 것일지 모른다.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은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분주하지만 바오밥은 “깊이 뿌리내린 나무만이 오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고 말하듯 하늘을 향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도 바오밥은 방치하면 별을 파괴할 수도 있는 존재로 묘사된다.

우리 마음속에도 바오밥의 씨앗이 있음을 말하는것이다. 인간관계도 늘 조심스럽고 좋은 말과 따뜻한 품성으로 대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결국 바오밥은 희귀한 모습이지만 내면은 탄실해 자연이 만들어낸 경이로움과 인간 존재를 비추는 거울같다.

거센 바람을 피하지 않고, 긴 가뭄을 원망하지 않으며,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수천년을 견디는 나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내 안에 저장하며 살고 있고 나무에게 선선한 그늘을 바라고 있는 건 아닌가 세월이 지난 뒤 나는 한 그루의 바오밥처럼 깊고 넓은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오래 견딘다는 것, 끝내 살아낸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쉼터가 된다는 것.
어쩌면 인생의 궁극적인 아름다움은 바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살면서 참된 의미는 그 나무를 심으며 훗날 그 나무의 그늘을 기대하지 않는것이다.

인간본연의 그리움과 아픔을 이겨내고 살아온 세월이 있듯 햇살을 받아들이고 비바람을 맞으며 강건하게 버티며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의 침묵이 고맙다.
수천 마디의 언어보다 그 어떤 충고보다 깊은 침묵의 인내와 진심을 깊은 나무에서 배운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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