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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 칼럼] 양서(良書)의 미문(美文)을 만나는 기쁨

2018-11-01 (목)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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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대학교마다 문과 계통의 학과들이 다 문을 닫을 지경이라고 한다. 명문대마저 그런다니 정말 격세지감이다. 이를테면, 철학과, 사학과, 국문과의 지원자들이 없어 기존 교수직을 줄이는 것은 물론, 그 분야들이 통째로 사라지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단다. 하지만 우리가 ‘사유(思惟)’ 없이 살 수 있을까? 사유를 글로 말하는 문학 없이 살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 한 신문기사에서 읽은 것이다. 한국인들이 1년에 책 한 권 읽을까 말까 한다는 통계수치였다.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슬프게 한 기사였다. 나 어렸을 때만 해도 책 읽는다는 것은 나의 교양수준은 물론 내 영혼을 살찌게 해주는 첩경이었다. 많이 읽든 안 읽든 이는 모두가 다 인지하는 진리였다. 비록 어린 나이였지만 이 보편적 진리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나 역시 내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게끔 나름 애썼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아니다. 책 안 읽어도 어느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책이 정보 탐색의 유일한 통로였던 그 시대엔, 무식하다는 소리, 세상물정 모른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다들 문자를 가까이하려고 했다. 지금은 어떤가? 책 필요 없다. 정보는 전화기 문지르면 쉽게 얻어낸다. 얻는 속도와 분량도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고 풍성하다. 사태가 이러니 책 읽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책이 정보수집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스티브 잡스는 늘 책을 끼고 살았다고 한다. 그는 특히 그 어렵다는 인문학 서적들을 많이 읽었다. 그가 창안해낸 ‘아이 월드(i-world)’가 우연히 등장한 게 아니다. 이 실례만 봐도 책은 정보제공만을 위해 존재하진 않는다. 요즘처럼 좋은 날씨가 또 언제 있을까? 옛 어른들이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고 강조해 말한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는 시즌이다. 독자들에게 권한다. 책 한 권 꺼내들어 이 가을 다 가기 전 완독할 것을 권한다.

아무 책이나 읽으라는 건 아니다. 우리는 활자화 되어 있으면 다 문제없을 거라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앞서 언급한 기사를 쓴 기자의 마지막 변이다. “아무리 ‘책에도 귀천은 없다’지만 그저 ‘불쌍한 나’를 쓰다듬는 나르시시즘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동의한다. 요즘 인기 있는 책들의 내용은 너무 가볍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벼움과 무관하게 그런 책들이 다 베스트셀러다(신앙서적도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는 양서의 기준은 이렇다. 일단 ‘문장력’이 있어야 한다. 그 책이 강조하는 주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을 전달하는 표현력에서 별 감동을 주지 못하면 그런 책은 함량미달이다. 좋은 문장력에서 우러나오는 ‘미문(美文)’은 그 길이와 상관없이 우리에게 오묘한 기쁨과 독특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준다. 그런데 그 길이가 짧지 않고, 수백 페이지 안의 각 문장들이 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런 책을 만나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얼마 전 난 오랜만에 좋은 책 한 권을 만났다. J. D. 밴스가 쓴 <힐빌리의 노래>라는 책이다. 켄터기 두메산골 출신의 한 가난뱅이 백인의 자전적 에세이다. ‘힐빌리’란 교육 받지 못한 중서부 빈곤층 백인들을 지칭하는 속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그들의 삶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아주 진솔하고 깔끔한 필치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번역도 감칠맛나게 참 잘했다. 읽는 내내 재미도 있었고 감동도 많이 받았다.

사실 ‘책 중의 책’은 ‘성경’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더 바이블’이다. ‘유일함’을 뜻하는 ‘the’를, 앞 글자를 소문자 b가 아닌 대문자 B를 붙여야만 했던 이유를 생각해봤는가? 책 중의 책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문학성이 갖는 탁월함은 예로부터 주지되어온 바이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언어로, 또 글로 다가오신 하나님을 만난다. 만물의 궁극(로고스/말씀)이신 하나님은 ‘육신(그리스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다. 그리스도가 곧 ‘말씀’이요, ‘로고스’다. 그런 점에서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 걸기였다.

바라기는, 독자들에게 성경과 함께 좋은 양서들이 함께하는 이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미문’의 향연 속에 흠뻑 빠지라. 잊을 수 없는 멋진 가을이 될 것이다.

<김 숭 목사/ 새크라멘토 크로스포인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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