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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과 태극기

2018-10-10 (수) 김해종 목사/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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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와 살면서 미국인들의 국기에 대한 사랑과 존경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느낀다. 가는 곳 마다 크고 작은 미국 국기, ”스타즈 엔 스트라입”을 자랑스럽게 걸어 놓은 것을 보며, 요즈음 일부 한국 사람들이 태극기에 대해 이상하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을 이해하기가 힘들다.

북한은 일찌기 태극기를 버리고 공산주의의 상증인 붉은 별을 그린 ‘인공기’를 만들었다. 나는 625 전쟁 때 인민군들이 서울을 점령하고 있던 3개월동안, 그 인공기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를 느끼면서 살았던 생각이 난다. 피난도 못간 우리 가족은, 아버님이 한국정부의 중직으로 계셨기 때문에, 그들의 체포대상이셨다. 다섯 번이나 붉은 완장을 찬 인민 위원들의 무기를 휘두르며 가택수색을 했다. 아버님은 피해 다니셨고 태극기를 잘 감춰야 된다고 하셔 싸서 부엌 아궁지속에 감추어 두었었다. 여름이라 불을 안 때기 때문에 그 안에 안전하게 감추어 놓을 수가 있었다.

민군이 점령했던 3개월은 정말로 배고픔과 공포 속에 살아야 했던 절망적인 지옥 같은 생활이었다. 그러던 우리에게 9월 15일, 미 해병대의 인천 상륙의 기쁜 소식은 928 서울 탈환으로 이어졌다. 9월 28일 서울이 수복 되던 바로 그전 날, 27일에 아군이 한강을 건너 격전 끝에 우리가 살고 있던 용산 일대를 먼저 해방 시켰다. 그날 아침, 총성이 서울 도심 쪽으로 옮겨 멀어지자, 당시 고등학교 일학년 학생이던 나는 조심스럽게, 인기척도 없는 거리로 나가봤다. 효창동에 살던 나는 가까운데 있는 초등학교에 가보니, 국기 게양대에 인공기가 살아지고, 대신 태극기가 걸려있지 않은가! 나는 너무 기쁘고 흥분되어 집에 뛰어와 소리 질렀다.


“어머니, 어머니, 미군 하고 국군이 왔어! 우린 해방되었어. 학교엔 태극기가 걸렸어” 그, 소리에 코마상태에 계시던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어 약한 목소리로 말씀 하셨다

“우리도 태극기를 내다 걸어라.” 그리고는 다시 말씀이 없으셨고 그날 밤 10시경 운명하셨다. 우리 아버님의 마지막 말씀은 “태극기를 내다 걸어라”는 말씀이었으니 아버님은 깃대위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생각 하시며 이젠 “내 가족이 안전하구나”는 것을 아시고 눈을 감으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는 우리의 국기는 1919년 3월 1일에 “대한독립 만세” 를 부르짖으며 온 국민이 손에 들고 흔들던 태극기뿐이다.
본인은 미국에 근 60년을 살면서 자랑스런 태극기를 미국인들에게 기회가 있는 대로 자랑하며, 설명했다.

나는 ‘태극기 휘날리며’ 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우리 역사의 비극. 625 전쟁의 비참한 이야기다. 그러나 그 무서운 전쟁 속에서도 지켜온 태극기는 우리 민족의 혼을 담고 있다고도 하겠다.

9.28을 보내면서 우리 아버님의 마지막 유언과 15살 소년 때 눈물 흘리며 밖에 내어 걸던 태극기를 생각한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태극기를 이렇게 정의 했다. “태극기의 태극은 우주만물의 탄생을 상징하고 4괘는 자연의 순환을 형상화한 것입니다.?태극기는 미적으로도 아름답고도 사상적으로도 심오한 자랑스러운 우리 국기입니다.”
나는 태극기가 항상 한반도에 휘날릴 것을 믿는다.

<김해종 목사/전 연합감리교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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