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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남수 목사,월드미션 프론티어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 난민 구제서 시작, 아프리카 6개국 선교사역으로 확대

2018-09-1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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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센터 10곳 건축,우간다 선교센터는 교육사역의 중심지

▶ 키갈리는 선교의 중심, 현지인 목회자로 독립교단 설립 추진

[우남수 목사,월드미션 프론티어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  난민 구제서 시작, 아프리카 6개국 선교사역으로 확대

UWMF 대학교 설립을 진행중인 우간다 선교센터, 월드미션 프론티어 교육사역의 중심지이다.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선교지 탐방을 마치고 캐냐에 있는 조카와 조카사위(송충석.이형한 선교사)의 25년 선교지를 보기 위해 캐냐로 이동하며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선교현장을 떠난다.

이번 탐방기를 마감하며 숨 쉴 틈 없이 달려온 날들이 내 마음과 기억속에 비디오 테이프와 같이 인상 깊게 각인되었다. 점점 익숙해진 검은 얼굴들과의 친밀감에 마음이 끌려드는 느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의 본심이 아닐까?

젊은시절에 호주에서 15년간 원주민들과 지내며 거울이 없는 그곳에서 나의 눈은 흑인들과 익숙해져 나의 얼굴색을 잊어버리고 서울을 방문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였던 것이 생각났다.


결국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하나 같이 만드셨고 서로 사랑하며 살게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아프리카 선교, 어디를 가나 검은 색으로 출렁이는 파도 같은 원주민들의 흐름속에서 황색 아시아인으로 노란 기름처럼 외롭게 떠 돌아야 되는 삶은 실로 외롭고 고된 삶 자체일 것이다. 그러나 선교사로서 지고 가는 짐은 예수님이 지어 주신 십자가이며 그분이 도와 주시기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우남수 목사,월드미션 프론티어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  난민 구제서 시작, 아프리카 6개국 선교사역으로 확대

UWMF 졸업생 목사 안수. 목사안수를 받은후 교회 사역을 계속한다.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아프리카 선교사역과 나의 짧았던(15년) 호주원주민 선교사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나는 호주 원주민 목사들로 구성된 교단에 소속되어 그들의 지도 밑에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시작한 비버딘 신학교에서 가르치며 늦게 서부 호주의 수도 피서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월드미션 프론티어 사역은 전쟁난민의 구제사역에서 시작하여 교육(유치원에서 신학대학원까지), 교회개척, 목회자 관리, 병원선사역, 구제사역 등 많은 사역을 감당하고 있었다. 지역적으로는 6개국을 커버하는 광범위한 지역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었다. 현재 건축중인 선교센터만도 열 곳이 되는데, 그 사령탑을 중심으로 모든 사역을 관장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데 내년이면 25주년을 기념하게 되니 4반세기 동안 하나님이 역사하신 그 놀라운 기적들이 월드미션 프론티어 선교역사에 고이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시간관계상 월드미션 프론티어 사역의 반정도 밖에 돌아볼 수 없었지만 모든 곳에서 들려지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지금까지 뿌려진 씨앗을 열매로 거두는 데는 또다른 반세기가 걸릴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우남수 목사,월드미션 프론티어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  난민 구제서 시작, 아프리카 6개국 선교사역으로 확대

아프리카 5개국 선교의 중심지 키갈리 선교센타. 대규모 주택 문화 도시 개발지역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외국인 선교가 토착화되고 한국이 교회들의 독립과 교단 형성에 1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 민족의 탁월한 리더십과 영성의 깊이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다.그러기에 세계 선교 역사에서 한국의 경우를 모델로 삼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식민지로 서양인들의 지배아래 있었기에 아직도 독립적으로 일을 이끌어가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한다. 월드미션 프론티어는 만약 지금이라도 리더십을 현지인들에게 넘길 경우 독립적으로 선교회를 이끌어 갈 현지인 리더십을 세우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지의 모든 선교센터의 리더십을 현지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파송된 한인 선교사들은 현지인 사역자들의 리더십 아래에서 순수한 선교사역만을 감당하고 있었다.

특히, 많은 젊은 아프리카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한국에 유학 보내기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데 한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선교회를 섬기는 유능한 현지인 사역팀이 조직적으로 선교회를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이색적이다. 이제는 신학대학원의 졸업생을 한국과 미국의 신학교에 유학 보내기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CLWMF라는 이름의 NGO단체로 사역하고 있는 월드미션 프론티어는 앞으로 3개의 기구로 나누어 사역을 확대할 예정이라 한다. 기존의 아프리카 각국의 NGO단체인 CLWMF는 사회봉사 활동과 의료사역 및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사역을 전담하고, 별도 기관인 월드미션 대학교와 교단의 설립이 추진중이다.


UWMF는 우간다 교육부로부터 설립허가를 받아 설립을 준비중이고, 신학대학교와 대학원은 종교 교육기관으로 아프리카 신학협의회 회원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우남수 목사,월드미션 프론티어 아프리카 선교현장 방문기]  난민 구제서 시작, 아프리카 6개국 선교사역으로 확대

빅토리아호수 1호 병원선이 정박하여 호수주변 마을 사람들을 진료하고 있다.


월드미션 프론티어는 그동안 교회 개척사역은 하지 않았지만UWMF신학대학과 대학원 졸업생들을 목사로 안수하여 백 퍼센트 현지인 목회자로 구성된 CWMF(church of World Mission Frontier)라는 교단을 설립하고 선교회의 현지화를 차근차근하게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알의 씨앗이 땅 속에 뭍혀 싹을 틔우고, 작은 나무로 자라고 거목이 되어 수천년을 지탱하듯이 월드미션 프론티어가 뿌린 선교의 씨앗은 세월이 갈수록 세대가 바뀌어도 누군가에 의해 이어져 갈 것이며 하나님의 키워 주심은 계속되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여행 일정관계로 돌아보지 못한 나머지 사역들을 돌아보며 받은 은혜를 알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겨둔 채 발걸음을 옮겼다.

불철주야 앞만 보고 몸이 부셔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사도 바울과 같이 앞만 보고 코뿔소 같이 달리는 폴킴(김평육)선교사에게는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빌립보서 3:13-14)는 말씀 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는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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