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다시 살아나라, 김명순

2017-12-29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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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온라인 사전 메리엄-웹스터는 2017년 올해의 단어로 성평등주의, 여권신장운동을 뜻하는 ‘페미니즘(feminism)'을 선정했다고 12일 USA 투데이지가 밝혔다. 올 한해 미국과 유럽에서 가장 화두가 된 단어도 ’권력형 성희롱‘이다.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캠페인은 거물 영화제작자, 쟁쟁한 정치인, 유수언론 간판 앵커, 교수 등 성폭력을 자행한 이들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있는 중이다.

2017년 전 세계적으로 성폭력 폭로에 나선 여성들의 용기를 보면서 과거 한국에서 데이트 성폭력에 희생된 한국근대소설의 첫 여류작가 김명순(1896~1951, 아명 탄실)이 저절로 떠오른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김명순 등단 100년을 기념하는 ‘다시 살아나라, 김명순’ 행사가 열려 소설가 김별아, 한국성폭력 상담소장 이미경 등이 김명순의 삶에 대해 토론회를 했다.

한국 여성문학의 개척자이자 여권운동가로 김명순, 김원주, 나혜석 세 사람을 든다. 김명순이 1917년 단편 ‘의문의 소녀’로 등단했고 1918년 여류화가 나혜석이 소설 ‘경희’를, 1920년 김원주가 ‘계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했다. 그러나 그 삶들은 파란만장했다.

김명순은 1951년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가 동경 뇌병원에서 사망했고 김원주는 불가(김일엽)에 귀의했고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연 나혜석은 1948년 무연고자, 행려병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 중 김명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본다.

1939년 문예잡지 ‘문장’ 2집에 실린 김동인의 소설 ‘김연실 전’은 문란한 연애를 선각자의 표식으로 여기고 무절제한 생활로 스스로 파멸하는 여자 이야기다. 당시 독자들은 소설의 주인공이 이름과 고향, 동경유학, 불의의 사고를 당한 뒤 귀국하여 여류 문사로 활동한 내용에서 단번에 김명순을 모델로 한 것임을 짐작했다. 김기진도 1924년 잡지 ‘신여성’에 쓴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에서 ‘일개의 무절제한 감상주의자’라며 비난했다.

김명순은 일본 유학 중이던 19세때 데이트 성폭력 희생자였다. 육군소위 리응준에게 납치 강간당하는데 이 사고가 조선의 신문에 대서특필 된 이후 그녀의 앞날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리응준은 해방후 좌익척결에 앞장서면서 친일 경력을 면죄 받고 대한민국 최초의 육군참모총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인터넷에 얼굴 사진까지 떠있는데 요즘 네티즌에 걸렸으면 망신살이 뻗칠 인물이다. 가해자는 출세가도를 달리는데 정작 피해자인 김명순은 학교 망신을 시켰다고 졸업장을 받지 못한 채 조선으로 돌아왔고 그녀는 살기위해서 글을 썼다.

그 시대가 그랬다. 여자가 시를 쓰고 소설을 쓰면 별종 취급을 받았다. 지금이라면 명백한 인격 모독에 악의와 허위에 가득 찬 내용이 소송감이지만 김명순은 고스란히 당해야 했다. 그녀는 예뻤고 5개 국어에 능통했으며 음악적 재능도 넘쳐났다. 그 험한 세평 속에서도 김명순은 여성작가 처음으로 소설집 ‘생명의 과실’ (1925년)를 출간하는 등 소설 21편과 시 107편, 희곡 3편, 수필과 평론 18편과 번역 시, 소설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작가 김별아는 장편소설 ‘탄실’에서 “창작을 통해 오해를 풀고 삶의 근거를 찾으려는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괴소문, 잡소문, 추문과 염문은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길바닥의 먼지를 훑고 냄새나는 입들을 옮겨가며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며 표현한다.
작년이 김명순 탄생 120주년이었고 탄실 김명순 바로 알기 붐은 계속 고조되고 있는 중이다. ‘김명순은 남성 중심 문단에서 큰 상처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문학으로 대항했다.’, ‘그의 삶과 문학을 기억하고 되살려야 한다.’ 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수개월간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피해여성들이 더 이상 참지 않으면서 미국사회가 달라지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성폭행 피해자인 김명순이 여자라서 당했던 수모와 불편부당한 차별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 성차별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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