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해를 기다리며

2017-12-27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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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시즌에 기억에 남는 영화 하면 1992년에 개봉돼 최고 흥행기록을 깬 ‘나 홀로 집에(Home Alone)’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영화는 그의 가족이 성탄절 휴가를 프랑스로 떠날 때 실수로 남겨진 집안의 말썽꾸러기인 이 소년이 집안에 침입한 악당들을 만나 뛰어난 기치와 재치로 당당하게 물리친다는 내용의 코믹한 영화이다.

영화는 10년이 넘도록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면서 최고의 흥행기록을 유지하였다. 이처럼 단순한 소재 하나에 관객들이 열광하고 감동하는 것은 현실의 온갖 어려움을 잊을 정도로 영화가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프랑스의 유명 겔러리 라파예트가 쇼 윈도우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스토리텔링 인형극을 내보내 숱한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한다. 뉴욕에서도 이번 크리스마스 시즌에 많은 뉴요커들과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들이 맨하탄 한복판에서 물씬 나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행복감을 한껏 맛보았다. 이들은 록펠러 센터앞에 장식된 오색찬란한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겨울 맛이 물씬 나는 은반의 아이스 링크를 보면서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환호하고 감동하며 짜릿한 크리스마스 전야를 보냈다.


상점마다 번쩍거리는 네온사인, 화려하게 꾸며진 쇼 윈도우, 형형색색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줄지어 있는 5번가의 유명 삭스 피프스 애비뉴(Saks Fifth Avenue) 백화점 건물은 수많은 군중들의 발길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아이들과 어른들의 동심을 유발하는 인형극(전설속 설인 예티가 시베리아에서 내려와 백화점 지붕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쇼 윈도우마다 이어지면서 탄성을 자아내게 했고 그 넓고 높은 건물 외벽은 모두 화려한 궁전을 묘사하는 형광색이 시시각각으로 화려하게 조명되면서 모여든 군중으로 이 일대는 발 하나 디딜 틈 없이 대장관을 이루었다. 밀고 밀리는 행렬로 자칫 무슨 대형사고라도 날 듯한 분위기였지만 어느 누구하나 화난 얼굴이 아니라 모두가 밝고 행복한 모습들이었다.

무장 경찰들이 길목마다 들어서고 바리케이트가 도로마다 설치돼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테러의 위협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처럼 고생하며 혼잡스러운 군중속에 끼이면서 이런 곳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그마한 행복, 즐거움을 맛보면서 현실의 시름과 걱정, 고민거리를 털어내고 새로운 힘을 얻으려고 하는 안간힘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단순하지만 즐거움이 가득 담긴 영화나 재미있는 볼거리를 찾는 군중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주는 것은 돈이나 좋은 집, 고급차가 아니라 바로 사소한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간단하고도 단순한 즐거움이다. 우리는 사는 게 너무나 버겁고 사회가 혼란스럽고 세상이 하수상하다 보니 이 단순한 즐거움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다. 어느덧 한해를 마감하는 길목에 서니 지난 한해 내가 어떻게 살았나, 과연 나는 행복한 생활을 하였는가 되돌아보게 된다.

즐거움과 행복은 꼭 어디를 가서 보고 즐기고 하지 않아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접하는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했어도 우리가 여기까지 올수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고 기적이다. 서로 잘 했다, 수고했다, 혹은 미안하다, 고맙다, 하는 말 한마디라도 다정하게 건네면 한해의 시름과 수고, 미움이 금세 눈 녹듯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한해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아직도 끝나지 않을 여정이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어찌 보면 기쁨보다 슬픔과 고통, 좌절의 순간이 우리에게 더 많았던 한해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는 고달프고 힘겨웠던 모든 어려움을 다 털어버리고 연말의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마무리해보자. 질곡의 정유년(丁酉年)은 멀리 가고 희망의 무술년(戊戌年)이여 어서 오라!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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