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겨울 이민

2017-12-23 (토) 김영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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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십년 만의 추위라던가
엉성한 플라스틱 차창 날려 먹고
오지게 떨었네.
제발 이번만은 정비공장에 맡기자고
신신당부하는 아내
한심 했으리
거적때기 같은 남편 의지해 겨울나기란
차창 한 구멍 틀어막는데 물경 200달러
갓 이민 온 사람 간 떨어지게
무려 일주일 치 피 같은 돈을 몽땅 바쳐야 한다니
이런 똥차 같으니라고
이만한 거금이면 시집 한 손수레도 들이겠다.
'SALE'이란 딱지를 달고
떨이하는 책 장터까지 끌려나온
공책 값보다 못한 것이
왜 손때는 그렇게 묻었던지
시쟁이들 매달아 덕장 동태 만드는 세상
눈비 속에 얼어 선 나무를 바라보며
누가 누구더러 불쌍하다 할까
종일토록 해 꼬랑지도 만져본 일 없으니
날은 아무 때나 저물고
검정 쓰레기 봉지 하나 얻어 뻥 뚫린 구멍 막아 보았네.
처음에는 펄럭펄럭 듣기 좋은 잔소리 같더니
고속도로를 달리자마자 차디찬 돌멩이 같은 바람에
사정없이 얻어터지는 비닐 창
울고, 울고, 또 울고 죽어라 울어도 살길 없음을 알았던지
그것이 그만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고 말았다.
이젠 발톱 세우고 달려드는 앙칼진 설한풍
이놈의 두 귀도 찢고 마누라 머리채도 잡아채고
눈 코 입 할 것 없이 마구 할퀴는데
처음으로 서럽게 가시 세우고 울었다.

<김영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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