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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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현실

2017-12-13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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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주말 첫 폭설과 함께 기온이 영하 17도로 급강하하면서 전국에 겨울한파가 몰아닥쳤다고 야단이다. 이곳 뉴욕도 주말에 내린 폭설과 함께 화씨 2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면서 차디찬 공기가 가슴을 파고든다. 갑자기 몰아닥친 한파 때문일까. 어느 때보다도 즐거워야 할 연말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미국 안에서 들려오는 소식들은 온통 우울한 것들뿐이라 마음이 더욱 차가울 수 밖에 없다.

당장 남가주 캘리포니아가 주택까지 삼켜버린 초대형 산불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시뻘겋게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고, 당국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보기만 해도 숨 가쁘게 돌아간다. 텍사스에도 30년만에 4인치가 넘는 눈이 내리면서 학교가 휴교조치를 취하는 등 기록적인 이변을 보이고 있다.

그 뿐인가.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자 이슬람 국가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금요예배일인 8일 팔레스타인은 물론, 지역과 종파를 초월한 전 이슬람 국가들이 곳곳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미국 타도를 외치고 나섰다. 시위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화형식을 하고 미국 성조기를 불태우면서 반미구호를 외치며 미국의 결정에 항거했다. 앞으로 이들의 분노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아니나 다를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 엊그제 당장 세계경제 중심지이자 전세계 수많은 관광객과 뉴요커들이 오고가는 맨하탄 한복판 타임스퀘어 버스터미널에서 20대 남성이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 뉴욕시와 전 미국이 또 다시 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충성맹세를 한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 용의자 몸에 장착된 사제 파이프형 폭탄이 일부 터지면서 용의자를 포함, 4명이 부상을 당했으나,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동기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공습에 대한 보복성이라고 한다. 만일 이날 파이프 자체가 폭발했다면 아마도 엄청난 인명피해가 났을 것이라며 전 뉴요커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3,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6,000여명의 부상자를 내 전 미국을 경악시킨 9.11테러의 참상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건 후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자신이 1시간 전에 사건 현장을 지나갔는데 만약 그때 폭탄이 터졌다면 어찌 할 뻔 했느냐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다. 악몽의 9.11테러는 이제 16년 전의 일이 아니다.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검은 그림자다. 테러는 이미 전 유럽을 휩쓴 상태이고 미국도 바로 우리 곁에 오늘도 내일도 항시 도사리고 있다.

당장 지난 10월말에도 맨하탄 다운타운에서 테러범이 트럭을 몰고 자전거도로를 질주해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런 악몽의 후유증은 한해를 보내고 또 다시 새로운 해를 맞으려는 뉴요커들의 ‘타임스퀘어 희망의 새해맞이’에도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 축제는 누가 뭐래도 뉴욕이 살아있는, 역동적인 도시임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행사이다.

9.11테러 때도 전 뉴요커가 하나 되어 슬픔과 고통을 딛고 일어났다.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는 이번 테러 현장에서 뉴욕은 세계의 경제와 문화의 심장부이자 다인종이 어우러져 사는 위대한 도시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미국은 어려움이 닥치면 친 트럼프건 반 트럼프건 모두가 하나로 결속해서 난관을 헤쳐 나간다. 이것이 미국의 위대함이고 세계를 아우르는 강대국의 모습이다. 이런 힘 앞에서는 어느 악한 세력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다.

이래저래 버거운 연말이다. 하지만 절대 테러범의 만행에 굴복해서 불안에 떨지 말자. 우리의 의연함은 테러범들의 무모한 행동이 어떤 이유이건 무모하다는 것을 확실하게 일깨워줄 것이다. ‘We are one’-우리가 하나인 이상, 어떤 테러범도 우리의 소중한 터전,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행복을 마음대로 앗아갈 수 없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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