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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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변하는 세상

2017-12-12 (화) 강자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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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친구와 세 사람이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칼국수집에 갔다. 바지락 칼국수를 시켜 모두가 잘 먹었다. 그때 한 친구가 ‘맛있네, 자주 와야겠다’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 손님이 칼국수를 잘 먹었구나, 그래서 ‘만족’하는구나! 자주 오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이 음식점은 장사가 잘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렇다, 병원에 몸이 불편하여 갔더니 친절하게 잘 보살펴 주고, 약을 먹고 곧 좋아졌다. 만족한다, 그러면 다음에 다시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기 친구나 이웃 사람들에게도 소개를 해줄 것이다. 나의 ‘만족감’이 남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칼국수를 먹고 만족해서 하는 말속에는 칼국수를 만든 요리사의 정성(인격)이 들어있다. 이 ‘마음가짐’이 칼국수를 맛있게 하고 손님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편안하게 하는 ‘의사의 인격’이 제일 중요하다.

병을 이해하는 의학지식은 치료 매체로서의 역할만 할 뿐이다. 즉 병은 의사의 인격이 환자의 인격을 치료한다는 뜻이다.

근본적으로 모든 ‘병’은 환자 자신이 치유한다. 의사는 다만 따뜻한 인격과 병리학적 지식과 기술로만 도와줄 뿐이다. 물론 이 ‘도와준다’ 는 말속에 환자가 만족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특히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도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일하고, 쉬고 잠잔다. 때로는 취미생활도 즐긴다. 이중에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도 있고, 싫어도 억지로라도 해야 먹고 사니까,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철학자는 현재를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분명하고 공감 할 수 있는 해답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철학자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경험하기 위하여 산다고 했다. 또 의사는 ‘암’을 정복하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죽지 못하겠다(James Watson) 등등. 그래서 많은 생활인들은 대리만족을 찾는다. 예술, 음악, 운동, 종교, 화초 가꾸기, 애완동물 기르기 등.

나는 ‘미식가’를 흥미있게 관찰한 일이 있다. 오페라에 미쳤다, 골프에 미쳤다느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2~3 마일씩 조깅을 해야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된다는 사람도 보았다. 이런 것들로부터 ‘만족감’을 어느 정도는 느끼는 것 같다.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충분히 못 받은 사람(만족을 느끼지 못했던)은 커서도 못 받은 사랑을 갈구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을 받거나 인증을 받으면 대리만족이 아닌 ‘직접만족’ 이긴 하지만 사회가 어른은 어른답게 마음 쓰기(사랑해주기)를 요구한다. 따라서 ‘대리만족’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핵심은 ‘만족감’을 느끼느냐? 에 있다. 못 느끼면 계속 찾으려고 할 것이고, 만족감을 느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쉽게 정리하면, 우리들은 과거의 감정으로 현재를 살고 있다, 따라서 현재가 과거의 감정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에 내가 나의 숨은 마음을 모른다, 그래서 ‘감정의 장애’ ‘느낌의 장애’로 이어지고 결국 ‘말’과 그 말을 하는 마음이 같지 않기 때문에 말의 뜻이 혼동을 주어서 ‘의사전달’이 잘 안 된다.

요즈음 ‘아메리카 우선(America First)’이란 말이 유행한다. 온 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생각의 방향에까지 혼동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백인 중산층 위주의 미국 국민이 현재를 ‘만족 못하겠다, 바꾸어 보자’라는 것 같다.

이 ‘미국우선주의’ 사상이 백인 중산층 사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여 사회적, 정치적으로 표면화 한 현상으로 보인다. 이러한 운동은 결국 ‘만족감’을 느끼는 쪽으로 미국을 변화하게 할 것이다. 이 ‘변화’라는 말 속에는 항상 ‘갈등과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강자구/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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