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담에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다. 이런 속담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한국에서 성장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방 앞에서 자신을 높이기보다는 낮추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묵시적 약속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족, 특히 자식들 일에 대해서도 겸양을 표해야 할 때가 비일비재했다.
자식자랑을 하는 부모는 팔불출이라는 말을 들었으며, 누군가 본인의 자식을 칭찬이라도 하면 그것을 부담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이런 과도한 겸양의 문화가 희석되어 가고 있지만, 아직은 그런 통념이 남아서 일정 부분 사회적 균형과 통합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1998년도 필자의 유학 초기,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좋은 프로젝트를 제안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회는 다른 학생에게로 넘어가 버리는 사건(?)을 경험했다. 교수가 제안을 했을 때 나는 단지 겸양의 의미를 담아 거절 아닌 거절을 했던 것인데, 재차 제안을 할 줄 알았던 교수는 두 말 없이 다른 학생에게 기회를 주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기회를 날려버렸다.
서구에서 겸손은 상당히 주의를 해야 하는데, 동양식 일반적인 겸손은 무능으로 오해 받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겸손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누구나 숙지하고 있으므로 상대방의 겸손을 이해하지만, 이런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서양에서는 그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겸손은 무능한 자의 변명으로, 경멸의 대상이거나 적어도 걱정거리가 된다. 물론 서양에도 겸손과 비슷한 개념인 ‘Humility’가 존재해서 능력 있는 사람의 겸손은 승자의 여유와 같은 의미로 평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서양의 겸손이란 개념은 나라마다 문화 별로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일반적인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부분도 존재한다.
동양과 서양의 겸손에 대한 이런 서로 다른 시각에 대해 어느 것이 옳거나 그르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단지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겸손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동서양을 떠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정리할 필요는 있다.
삼인지행필유아사(三人之行必有餓師)-세 사람이 함께 길을 가면 그 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우리는 알고 있다. 공자는 배움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늘 가르침을 청했고, 그것이 어린아이일지라도 진지하게 듣고 배우기를 기꺼워하였다. 이런 공자의 가르침은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이라는 것, 또한 상대방에게 배울 점을 찾도록 노력하라는 것이었고, 이것이 진정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겸손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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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준/ 아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