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불협화음

2017-12-04 (월) 최효섭/목사 ·아동문학가
크게 작게
한국의 패션(Fashion)계는 세계를 앞질러가는 것 같다. 최근 한국 패션계가 공개한 불균형 재단, Unbalanced Cut 라는 것이 보도되었다. 한 신사가 바지를 입었는데 한 쪽 다리는 길고 한 쪽 다리는 짧은 양복바지이다. 한 미녀가 스커트를 입었는데 왼쪽 절반은 길고 오른 쪽 절반은 짧은 스커트이다. 뒤떨어진 내 머리로서는 이해가 안 되지만 그런 양장을 만든 사람과 그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균형 잡힌 아름다운 옷일 것이다.

의상뿐이 아니라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피카소의 그림이 왜 그렇게 좋아서 작은 그림 한 폭이 수백 만 달러에 호가되는가! 그림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불균형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코가 위에 붙어있고 입은 너무 커서 무서울 정도이다. 그 걸 웃기는 그림이라고 하면 무식한 인간이 되고 지긋하게 눈을 뜨고 그 그림에 감동되어야 현대의 지성인 자격이 있다.

음악에 불협화음이라는 것이 있다. 화음이란 둘 이상의 소리가 울렸을 때 듣기 좋은 소리를 말한다. 4중창 합창 등은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등 남성, 여성들이 함께 소리를 지르지만 아름답게 어울려 듣기 좋은 음악이 된다. 여러 소리를 내는 많은 악기들로 연주되는 교향악이 어쩌면 그렇게 듣기 좋은 소리를 만들까! 그런 화음을 만드는 지휘자는 천재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통사람에게 듣기 좋은 편안한 화음이 아니라 음악에는 불협화음이라는 것이 있다. 동시에 울리는 둘 이상의 음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불안전한 느낌을 주는 음을 말한다.

그러나 전문가이거나 음악을 잘 아는 사람의 귀에는 이 불협화음이 한 층 더 고차원의 아름다움을 주는 화음이라는 것이다.

작곡가가 불협화음을 작곡에 사용하는 것도 그 아름다움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문외한은 이해할 수 없지만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니 그 말이 맞을 것이다. 불균형의 균형, 불안전의 안전, 그런 것이 소위 현대감각일지 모른다.

문학에서도 빛바랜 민화에 현대감각을 입히는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문학가의 상상력은 대단하다. ‘지금’을 뛰어넘어 ‘미래’의 세계를 여는 엄청난 작업을 문학가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문학을 하는 동화작가들이 옛이야기를 되풀이하고 있는 줄 아는가? 그렇지 않다. 이야기에 현대감각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동 문학가들은 현실의 탈을 벗기고 미래를 여는 엄청난 작업을 하고 있다.

요즘 교회의 예배는 10년 전의 예배와 아주 다른 틀, 모양,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100년 만에 찾아온 예배의 혁신 시대이다. 전통적인 언어 중심의 예배 형식에서 벗어나 영상 중심으로, 더 나아가 드라마의 예배 도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예배가 입체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예배에 젖은 신도들은 다분히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현대화 과정은 세계 문화의 추세이니 아무래도 구세대가 새 세대의 예배를 이해하는 쪽으로 타협을 해야 할 것 같다. 탈바꿈은 예배 형식에서도 불가피하지 않겠는가!


내년(2018년) ‘한영(韓英) 미술교류의 해’를 맞아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한 ‘불협화음의 기술’ 일명 ‘다름과 함께 하기’가 지난 9월부터 서울에서 개최되고 있다. 다름과 함께 한다는 것이 곧 불협화음에 동참하는 것이다. 불협화음을 더욱 고차원의 화음으로 이해하는 노력이 현대화의 피치 못할 과정이다.

그것이 어디 미술뿐이겠는가? 음악 무용 희곡 영화 예배 등 모든 예술적인 분야에서 불협화음과의 동행은 불가피하다.

묵은 틀을 깨는 건데 언제나 파괴에는 깊은 이해와 엄청난 용기가 요청된다. 전통과 습관의 언덕을 과감하게 넘지 못하면 쇄신도 혁신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최효섭/목사 ·아동문학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