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노스 코리아, 노스 코리아”

2017-11-28 (화) 노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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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의 눈

한국에 보낼 작고 가벼운 소포를 들고 우체국엘 갔다. 주소를 컴퓨터에 천천히 쓰고 있던 우체국 직원 여자가 컴퓨터를 한참 들여다보더니 고개들 들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여긴 퍼스트 클래스(First Class)로만 보내야 해요. 48달러예요.”한다. 순간, 나는 눈치를 챘다. 하, 또 노스 코리아구나.

미국과 북한이 서로 원자탄을 쏜다 만다 하던 때 딸 아이가 농담처럼 물었다. “엄마, 우리 부모의 고향이 노스 코리아라고 하면 안돼?”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이민 2세의 뿌리를 제대로 알려주려고, 친가와 외가 모두 다 북한의 평양이 고향이며 전쟁 전에 서울로 이사와 엄마 아빠는 모두 서울에서 자랐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김정은도 김정은이지만, 나로서는 트럼프가 왜 저럴까 했다. 오바마가 캐냐에서 태어났다는 뻔한 거짓말로 백인들의 마음을 사기 시작한 것부터 해서 여자문제, 러시아 문제, 멕시코 월 문제에다 이민자 문제며 건강보험, 세금 등 모든 것이 맘에 안드는 트럼프인데, 도대체 왜 노스코리아까지……트럼프가 싫기만 했다.


그 동안 한국에 편지를 보낼 때에 우체국 직원들이 어찌 실수를 하랴 싶어, 항상 Seoul, Korea라고만 써 왔다. 가끔 미국사람들이 노스 코리아에서 왔는지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는지 물으면 “물론, 사우스 코리아지. ”라고 가볍게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공공기관에 갔을 때, 직원이 “Are you from North or South?’ 했을 때에는 정색을 하고, “당신이 노스 코리안을 만나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그 직원이 어색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해서 같이 웃긴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이번에 또 우체국에서 노스 코리아가 문제가 되자 은근히 화가 났다. 하긴 뉴스마다 노스 코리아 노스 코리아 하고 있으니 이해는 된다. 그러나 요즈음 트럼프 덕분에 감추어져 있던 백인우월주의가 진면목을 드러내는 터에, 이민자라 공연히 불이익을 당할 까 하는 걱정에다가 한국 이민자에게는 ‘노스 코리아’라는 단어 하나가 더 따라 붙는게 아닌가 심기가 불편하다.

잡지 ‘아틀랜틱(The Atlantic www.theatlantic.com)’ 20일자에 실린 ‘The Nationalist’s Delusion’이라는 기사에는, 트럼프를 찍은 사람들 중에는 흔히들 평가했듯 직업 잃고 가정이 파탄나고 가난해서 화가 난 백인들보다는, 오히려 중산층 백인들의 투표수가 더 많았다고 한다.

백인 우월 국수주의자들이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앞세우고 미국을 옛 미국으로 돌려 놓을 것인지, 아니면 로마가 멸망했듯이 미국도 과연 하루 아침에 무너질지, 그것이 노스 코리아 핵폭탄 보다도 더 걱정스럽게 다가온다.

불법으로 와서 일도 잘 안하면서 온 가족이 메디케이드 같은 혜택은 다 받는다고 멕시칸을 싫어하는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듣곤한다. 그래서 트럼프를 지지한다고들 했었다. 어쩌면 백인들 눈에는 그 멕시칸과 노스코리아를 연상시키는 한국인들이 같은 유색인으로 보이는 것이나 아닌지…… 나의 자녀들이 살아 갈 미국사회가 걱정스럽다.

<노려/웨체스터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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