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이 컨택(Eye Contact)

2017-11-25 (토) 김주앙/화가·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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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눈을 똑바로 뜨고…’ ‘감히 누구 앞에서…’ 그랬다. 우리 한민족의 뿌리 깊은 역사적 배경은 그랬었다. 나이 많은 연장자 앞에서, 또 나보다 높은 자리의 사람 앞에서는 시선을 몇 각도 낮추고 대하는 것이 기본 예의범절 이었다. ‘눈을 똑바로 뜨다’의 동서양 문화적 차이는 진짜 정 반대다. 아니 서구문화로 갈 것도 없이 미국으로만 좁혀 가기로 하자. 그런 면에서 ‘아이 컨텍(Eye-contact)’의 의미는 미국문화의 일 번지,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한국은 글로벌 세계화를, 첨단 IT를 질주하는 자긍의 나라로 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수 백, 수 천 년을 이어온 유교사상과 불교적 유전인자는 우리민족 혈통 속에 깊게 새겨진 역사적 배경을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의 유교, 인도의 불교, 그리고 일제, 일본의 강점기… ’과연’ 저들 문화적 역사 속에서 우리의 독립된 개체의 존재성은 있었던 가? 한민족, 한국인은 과연 누구인가? 새삼 내 청년기에 몰입 했던 기억들이 떠오른 것은 바로 엊그제 겪었던 그 일 때문이다.

몸 어딘가 불편해서 의사를 찾았다. 그런데 몇 환자를 대하는 직원이나 간호사 의사, 모두의 친절함이 지나칠 정도였다. 그런데 나 같은 아픔의 환자에게는 ‘쌔’한 태도에다 진료도 데면데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항상 왼편 쪽 만성 편도선염을 가지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자 편도선이 심하게 아파왔다. 괴로운 건 목과 연결된 왼쪽 귀와 눈, 코 벽까지 줄줄이 아파오는 것이 문제였다. ‘올 겨울 나기가 무서워요..’ 주치의에게 호소했다.


이른 시간인데도 환자가 많았다. ‘굿 닥터’ 일까... 왠지 기대가 됐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내 이름이 불려졌다. 진료실 앞에는 또 다른 대기실이 있었다. 간호사는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고… 얼마 후 나온 간호사가 아이패드로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며 ‘사진을 찍을까요?’ 라고 했다. ‘왜요? 왜 사진을?” 나는 당황했다. 왜 환자 얼굴을 찍어야 하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뭐 ‘처음 온 환자얼굴을 익히려고 닥터가 원해서’란다.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닌 가 생각하면서도 환자의 입장이다 보니 그냥 찍히고 말았다.

뭔가 찜찜한 기분으로 진찰실에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음에도 의사는 내게 눈길 한 번, 대답 한 번 없다. 옆에는 흰 가운을 입은 여자 하나 책상에 앉아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역시 눈길 한번이 없다. 방은 작고 밀폐된 듯 공기가 탁해 금방 호흡곤란이 왔고 게다가 투명인간 취급이라니… 아무렴 좋다, 조금만 참자 하고 좀 참았다.

담당의는 도무지 환자와 Eye contact을 안 한다, 아니 못한다? 이런 상황은 내 평생 처음이다. 초지일관 그럴 수는 없다. 그러기가 더 어렵지 않은가. 특히 나의 아픈 부위는 환자의 얼굴과 가장 가깝게 거리가 좁혀질 수밖에 없는데... 간단한 체크후 의사는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한 번 더 받아야 겠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특별검사처방전과 항생제 처방전을 건네주고 2주후에 예약을 잡고 다시 오라고 했다. 나오기 전 나는 의사에게로 바짝 다가가 일부러 그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 봤다. 몇 초 동안을, 그는 여전히 드대로였다. 그는 이곳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1.5세이다.

Eye-Contact, 소통의 창… 미국문화의 예의범절 1번지 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체벌 받는 순간에도 교사와 학생과의 Eye contact은 필수 예의이고 범절이다. 하물며 의사와 환자와의 Eye contact은 필수이다. 이를 무시하고도 과연 환자의 아픔을 치료한다고 할 수 있을까?

<김주앙/화가·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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