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11월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구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구제금융을 신청한다는 발표를 했고 전 국민은 경악했다. 재외한인들도 충격을 받았다.
이어 우수수 무너지는 기업들, 강도 놓은 구조조정에 가장들이 직장을 잃었고 수십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한숨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 여파는 뉴욕 한인사회에도 태풍으로 불어왔다. 유학생들은 학업을 중단해야 했고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식당, 여행사, 무역회사 등이 경기침체에 들어갔다.
미주한인들은 ‘고국에 100달러 보내기’ 캠페인을 펼쳤고 전기제품과 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을 구매했다. 한국의 어려운 외환사정을 돕는 한인들의 마음은 시집간 딸이 친정을 걱정하는 그것이었다.
1997년 12월에 시작된 금모으기 운동은 새마을부녀회 등에서 시작되어 다음해 1월 KBS를 비롯 지상파 방송사 캠페인으로 확대되었다.
“국민들이 장롱 속의 금붙이를 꺼내 은행으로 가져갔다. 금반지, 금목걸이가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귀한 사연이 담겨있는 소중한 징표들이었다. 신혼부부는 결혼반지를, 젊은 부부는 아이의 돌 반지를, 노부부는 자식들이 사준 효도 반지를 내놓았다. 운동선수들은 평생 자랑거리이며 땀의 결정체인 금메달을 내놓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추기경 취임 때 받은 십자가를 쾌척했다고 한다. ”<김대중 자서전 중에서>
1998년 4월까지 진행된 금모으기 캠페인에 227톤의 금이 모였고 금 수출가격은 약 22억 달러, 당시 외환보유액이 200억 달러 수준으로 볼 때 무시 못 할 금액이었다. 금 모으기 자체의 효용성보다는 나라의 위기극복에 온 국민이 나섰다는 의지를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신용도를 높인 것이다.
이 금모으기 운동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8일 한국방문 국회연설에서 언급했다.“여러분의 손으로 이룩한 나라가 금융위기에 처했을 때 여러분들의 결혼반지, 가보, 황금 행운의 열쇠를 내놓아 자녀들의 더 나은 미래를 담보하고자 했다.”는 연설로 금모으기 운동을 칭찬했었다.
이렇게 한국민과 재외동포들이 힘을 합해 IMF빚을 3년 좀 지나 예정보다 1년 앞서 이자까지 갚아버렸다.
올해는 IMF 이후 20년이다. 한국 경제는 그때보다 외환보유액이 19배, 900억 달러 넘는 경상수지 흑자에 한국경제는 성공했다지만 서민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고들 한다. 미국에도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가 닥쳤고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이어졌다. 미국경기는 회복되었다지만 한인경제는 여전히 힘들다. 뭔가 희망을 주는 일도 없다.
1997년 IMF때는 박찬호가 있었고 박세리가 있었다.
박찬호는 LA 다저스에 소속돼 1997년 첫 풀타임 선발투수로 14승8패(방어율 3.38)를 거뒀다. 국민들은 박찬호의 경기를 보며 힘든 현실을 잠시 잊었고 박찬호는 1997년 시즌 후 서울역 노숙자들을 보고 실직자 가정 및 야구를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돕고자 박찬호 장학회를 출범시켰다.
박세리는 1998년 US 오픈 여자골프대회에서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다. 공이 연못에 빠지는 위기상황에도 맨발 샷으로 공을 쳐내어 마치 IMF의 수렁에 빠진 한국민을 건져내듯 통쾌한 승전보를 전했다. 그때 우리들은 박찬호와 박세리로부터 IMF로 인한 상처에 위로받고 위기극복의 힘을 얻었다.
이번 연말에도 주위에 어렵지 않다는 이가 없는데 지금은 누가 우리를 위로해 줄까? 가수 윤복희가 불렀고 임재범이 ‘나가수’에서 열창했던 노래 ‘여러분’의 가사가 떠오른다.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네가 만약 외로울 때면 내가 친구가 될 게.”
만나야 할 사람을 이 해가 가기 전에 만나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자. 함께 내년도 계획을 웃으면서 세워보자. 또한 내년 2월에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국에 금메달이 쏟아져 모두가 활짝 웃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바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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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