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거실에는 일정한 제 자리가 없이 필요에 따라 위치가 바뀌는 헌 의자가 하나 있다. 먼저 살던 집에서 현재 집으로 이사할 때 신통한 가재도구나 집기들이 없어 보였지만 막상 짐을 꾸리다보니 버리기에는 아깝고 끌고 가기에는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 별로 신통해보이지 않는 물건들이 의외로 여기저기에서 튀어 나왔다.

실용도와 외관에 따라 이삿짐 트럭에 싣고 갈 것과 차마 버리기 아까운 것들, 임자를 만나 팔면 돈이 될 것 같아 보이는 것들, 버려도 조금도 아깝지 않은 것들이 분류되어 버리기도 하고 챙기기도 하는 가운데 남편이 오래 전 사무실을 오픈할 때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이유로 그냥 버려도 전혀 아깝지 않아 보이고 덩치만 큰 헌 의자가 이삿짐에 실려 온 이유다.

그 옛날 사무실용이었음을 스스로 증명하듯 다른 가구들과도 전혀 어울리지 않고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특징이라고는 없는 그냥 낡은 이 의자는 그나마 밑에 바퀴가 붙어있어 움직이는데 힘을 쓸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신경 쓸 일도 없이 이리 저리 필요에 따라 밀려다니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소에는 좁다란 방안에 떠억 뻗치고 있으니 오가며 발길에 채이기도 하여 그대로 내다 버리고 싶은데 선뜻 쓰레기더미 옆에 내놓아지지가 않는다.

비싸게 주고 샀다고 주장하는데 별 이의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닳고 해진 부분은 40년 가까운 세월의 흔적이라 하겠지만 좋은 재료를 썼음에 틀림없어 보이는 단단한 나무로 견고하게 짜여져 있어 내 놓으면 당장에 누군가가 집어가 요긴하게 쓸 것에 틀림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러니 아깝기도 하여 과감히 내다 버립시다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헌 의자도 어쩌다 모임이 있어 여러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야 할 때는 이 헌 의자가 당당히 제 몫을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크기와 모양새 때문에 모임의 인도자나 연장자가 자연히 그 자리에 앉게 되는데 그때 이 헌 의자의 위용은 당당해지는 것이다. 위치가 바뀌어 한가운데 있게 될 때는 냉큼 이 의자에 앉는 것은 거의 무례해보이기까지 하다.

얼마 전 새로 개축하는 한 미국교회에서 그동안 사용하던 헌 의자 100여개를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소식을 듣고 쫓아가 본 적이 있다. 100년이 넘은 교회를 지켜온 이 의자들은 머리 닿는 곳이나 팔걸이같이 나무가 사용된 곳은 구석구석 정교하게 장인의 손이 닿은 듯한 느낌이 요즘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의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견고해 보였다. 게다가 닳아빠져 남루해졌지만 실크커버는 한때 품위가 빛났을 고색창연의 미색까지 엿보였다.

이 의자들을 몽땅 트럭에 실어 널찍한 공간에 실어다놓고 싶은 욕심이 끓어올랐지만 도리 없어 허전한 발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 의자들은 현대적인 디자인의 새 의자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어 쓸데없는 물건들을 폐기처분하는 용역회사의 트럭에 실려 갔다.

마침 창문을 통해 떨어지는 석양속에 낡은 소파보다 손등의 주름살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헌 의자에 앉아본다. 멋진 외양의 가죽소파보다 훨씬 아늑한 느낌이다. 가끔씩 위용을 자랑하는 헌 의자가 되어야겠다.

<윤혜영／병원근무·티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