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복수는 누구의 것?

2017-11-17 (금) 민병임 논설위원
크게 작게
예나지금이나 만화, 영화, 드라마의 주제는 ‘복수’가 으뜸이다. 불륜, 출생의 비밀, 이혼과 배신, 복잡한 가정사라는 주제도 인기지만 부모의 원수, 남자의 배신, 모든 것을 잃은 이의 복수극은 끊임없이 나온다. 지지리 가난한 원수는 없다. 대부분의 원수는 사회특권층이거나 재벌이다.

이 복수라는 것이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가족이 죽고 모든 것을 잃었다면 복수혈전으로 가게 마련인데 스피드 있고 관객의 공감과 몰입도가 깊으면 그 드라마는 성공한다.

기원 전 1,750년경 만들어진 최초의 성문법인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복수하라 한다. 현재의 사법 제도는 동일한 육체적 보복을 해서는 안되고 형량과 물적 배상을 치르게 한다.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부암동 복수자들’은 재벌녀 이요원, 생선장수 라미란, 대학교수 부인 명세빈에 혼외아들까지 4인이 합세하여 바람난 남편, 학교폭력 가해자 엄마, 가정폭력 남편, 친부모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한다. 망신 주기, 미팅 참여 못하게 하기 등등 소소하고 허당기 있는 코미디 복수극으로 통쾌한 복수는 아니지만 다 같이 머리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진짜 언니가 되고 동생이 되면서 기댈 데가 생겨난다는 것에 관객의 눈이 따스해진다.

복수극이라면 중국 무협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청소년 시절에 다들 진용(金庸)의 ‘영웅문’을 비롯 무림고수들이 천하를 호령하는 방대한 소설이나 만화, 영화들을 즐겼을 것이다. 부모나 자녀의 원수를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드디어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으면 복수는 완료된다.

오래 전 정의로운 복수극을 본 적이 있다. 2015년 중화TV에서 방영된 중국 드라마 ‘랑야방-권력의 기록’이다. 양나라와 그 수도인 금릉이 무대로 월귀비의 아들 태자와 황후의 양자인 예왕이 차기 황위를 두고 정쟁을 벌이고 신하들도 권력다툼에 열중한다. 강좌맹의 주인 매장소는 본인은 무술을 못하나 천재적 두뇌로 소문나 그를 얻는 자 천하를 얻을 것이라는 말이 돈다.

그는 양나라 적염군 소년장수 임수였다. 13년 전 황장자 기왕은 적염군을 통해 반란을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죽고 7만 적염군은 몰살당한다. 임수는 극적으로 살아나나 화환독에 중독되어 살과 뼈를 깎는 고통으로 외모가 완전히 변하고 병약한 몸이 된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황자 정왕 앞에 매장수란 인물로 나타나 그를 주군으로 모시며 태자가 되도록 도와준다. 올곧은 성품의 정왕은 전쟁에 공을 세우고도 변방을 떠도나 매장소를 얻음으로써 권력에 한발씩 가까이 간다. 자리를 굳힌 정왕은 적염군 사건을 재조사 하겠다고 한다.

드디어 아버지를 비롯 적염군을 기리는 사당에 앉아 분향하는 매장소, 그의 표정은 감개무량하다. 결국 권력을 쥔 자를 바꿈으로써 기록을 바로 잡고 역적의 오명을 벗는 명예 회복을 하면서 매장소의 복수는 완성되었다.

복수의 원조로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1845년 작)'이 있다. 1815년 연인과의 결혼을 꿈꾸던 착한 선원 에드몽 당테스는 그를 시기하던 회계사, 남의 연인을 짝사랑 한 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알고도 모른척한 이웃, 출세에 대한 야망으로 에드몽을 희생양으로 삼은 이, 이 4명으로 인해 14년간 감옥에 갇힌다. 같은 죄수 신부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출하고 신부가 넘겨준 보물로 몽테크리스토 백작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에드몽, 치밀하게 준비하여 한 명씩 단죄하는데 마지막 순간 극도의 공포 속에 죄인들은 용서를 구한다.

복수를 완성한 그는 행복했을까? 복수를 하느라 소모한 세월이 아깝지는 않았을까? 자신에게 상처주고 배신한 이에게 복수하겠다는 집착이 지나치면 오히려 자신의 삶이 피폐해진다. 복수를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며 오랫동안 미워하다보면 자신이 먼저 피곤해지고 지치는 것이다. 복수란 누구의 것일까? 압박과 구박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잘 살고 행복해지는 것이 진짜 복수가 아닐까. 복수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

<민병임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