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일의 불법체류자들

2017-11-04 (토)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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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 사는 동생에게서 그곳으로 밀려 들어온 중동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생은 19살난 A라는 아프가니스탄 청년을 6개월간 집에 데리고 있었다. 망명자들이 국경을 넘어오면 독일 정부에서는 그들을 각 카운티에 배분해 보내 거주할 곳을 마련해 준다고 한다. 주거는 공동 부엌이 있고 침실은 따로 쓰는 형태다. 독일정부는 망명자를 위해 이런 주택을 다량 지었다.

동생이 사는 곳은 조용한 서버브다. 주민들은 이질적인 그들과의 친화를 주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A는 아프가니스탄이 고향이지만, 어려서 부모에 의해 파키스탄으로 팔려가 생활했다. 13세 때 어머니가 죽자 그는 맏이로서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을 찾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장례가 끝난 지 이틀 만에 아이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버리고, 아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된다. 삼촌이 4형제를 데리고 카불로 가서, 거기서 아이는 길거리에서 양말장사를 한다.

하지만 경찰이 아이들에게서 자리값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는 터라 장사는 하나마나다. 결국 삼촌은 하나라도 입을 덜기 위해 첫째와 둘째를 다시 내쫓는다. 동생과도 헤어진 A는 길거리에서 만난 또래에게서 국경을 넘게 해주는 브로커 이야기를 듣는다. 돈이 없던 아이는 브로커의 집에서 8개월을 일해 준 대가로 독일로 들어간다.


2014년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그와 함께 독일도 들어간 망명자가 80만명이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망명자들은 문맹이 많았고, 정부는 이들을 위해 3단계를 이수해야 하는 직업학교를 세웠다. 우선 1년 반 동안 언어를 공부하고 그 후 6개월은 실습을 하게 되어 있었다. A는 19살이 되었을 때 동생네 집으로 왔다. 동생이 A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A가 동생을 선택한 셈이다.

동생은 A를 학교에 보내려 했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계속 수업에 빠졌다. 주말에는 한 시간 떨어져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가서 지냈다. 동생은 딸들이 다니는 테니스장의 식당에 파트타임으로 그를 취직시켰다. A는 학교는 잘 안 갔지만 돈을 버는 데는 열심이었다. 하지만 생활의 규칙을 잡는 것은 어려워서, 그는 소파에 누워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했다.

독일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동생은 자기 딸들이라도 그렇게 생활하는 것을 보아넘기지 못하는 터여서 야단도 많이 쳤다. 지금도 그는 동생을 ‘엄마’라고 부르지만, A는 그렇게 동생의 인내를 시험하며 ‘엄마’에게 때늦은 어리광을 부렸다.

얼마전 그는 망명신청을 했지만 심사에서 떨어졌다. 언어는 익혔지만 쓸 줄을 모르고, 학교를 이수하지 않은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는 이제 불법체류자지만, 아프가니스탄 대사관 폭탄 테러 사건 때문에 당장 추방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금은 열심히 학교에 다니고 있고, 3단계를 다 마치면 독일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도 있다. 현재 변호사를 사서 망명 재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것이 독일 불체자들의 삶이다.

<한영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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