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래도 희망을 믿는다

2017-11-03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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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고의 영화상인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성추문에 휩싸인 하비 웨인스타인을 제명했다. 할리웃의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지난 30여년간 여배우 및 배우 지망자, 여직원들을 성희롱 및 성폭행, 부적절한 언행을 한 것이 10월5일 뉴욕타임스를 통해 최초 보도되면서 ‘나도’, ‘나도’ 하며 고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것도 안젤리나 졸리, 기네스 펠트로, 애슐리 주드, 줄리아 로버츠 등등 세계적 스타들이 그에게 성추행 당했다며 제보했고 이들 중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서 시작한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가 화제를 불러 모으며 파문이 점점 커지고 있다.

‘당신이 성폭력 피해나 성희롱을 당했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트윗에 ’미투‘라고 써달라고 하자 스포츠, 증권가, 대학, 언론 등 사회 각 분야에서 고발이 잇따르며 일반인들도 적극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하비 웨인스타인은 미국 FBI와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면서 나락에 떨어졌다.


피해자들은 일자리, 밥그릇, 승진과 미래를 담보로 한 권력의 횡포에 몹쓸 짓을 당하면서도 무섭고 두려워서 침묵했다고 한다. 그런데 30여년 만에 낸 용기가 그저 폭로에 그치고 만다면 ‘할리웃이 그렇지 뭐’, ‘연예인은 다 그런가?’ 하는 것으로 끝나버릴 것이고 앞으로도 이런 일은 지속될 것이다.

이들 성공한 여배우들이 인기와 명성, 힘을 갖고도 왜 그동안 자신과 같은 처지를 당한 후배 여배우 및 동료들을 도울 방법을 생각지 못했을까? 누구나 알만큼 유명한 대형 배우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성폭행 방지를 위한 논의에 앞장서야 한다. 여성보호 관련단체를 적극 지원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진짜 숨겨야 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성폭력 생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다. 가해자를 공개시켜 부적절한 행동에 대한 철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하고 어린 학생에게는 성희롱 및 성폭행 방지 교육을 시켜야 한다. 불상사가 일어났을 경우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말고 공론화 시킬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

할리웃 배우 중 안젤리나 졸리의 행동이 돋보이는 것은 분쟁지역 성폭력 방지를 위한 프로젝트 국제회의를 열고 국제적 지원확대 방안에 나섰기 때문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2001년부터 세계인권 활동가로써 유니세프에 100만 달러를 기부, 분쟁 지역 성폭력 근절에 힘써 오고 있다. 졸리는 또 분쟁지역의 성폭력 근절에 자신의 평생을 바칠 것이라고도 말했다.

사실, 세계 제1국가인 미국에서 일어나는 여성 인권 침해도 이러할 진대 제3국에서 자행하는 성폭력은 얼마나 심각하고 난해할까.

아프리카 콩고의 성폭력 현실을 고발한 포토스토리 ‘콩코의 눈물’ 로 2008년 페르피냥 포토페스티벌 ‘제1회 피에르 & 알렉산드라 불라상’을 수상하고 최근, 캐논 영국선정 전세계 여성사진가 11인 중 한명으로 선정된 후배 여기자 J가 있다. 지난 9월에는 3주간 우간다를 방문, 내전당시 납치당한 소녀병들과 성노예, 남수단 성폭행 피해자들을 인터뷰하고 현지 여성단체 및 개인들에게 한국위안부 할머니들이 기탁한 나비기금 3,000여 달러를 전달하고 왔다고 한다. 성폭행 피해자 병동의 ‘피스툴라’ 질환자들은 주로 질과 요도 사이에 제3의 누관이 생겨 소변이 계속 새어나오는 고통을 당한다고 한다.

자신의 사진전시회에서 기금을 마련하여 병원에 기부, 성폭력 피해여성의 피스툴라 복원 무료수술을 후원하는 그녀는 취재를 위한 경비가 모자라자 하루 두끼로 줄여 점심을 굶기도 했다고 한다.

‘사서 고생을 해도 사진 한 장이 세상을 바꾸진 못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대신 이 사진이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데 도움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믿는다.”

성폭행 및 성추행 피해자인 돈 많고 유명한 할리웃 배우들이 못한 일을 조그만 한국 여기자가 발로 뛰며 하고 있었다. 이메일에 답했다. “한때 너와 함께 일한 것이 영광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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