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덮어질 수 없는 진실

2017-11-01 (수)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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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전후 70년을 기해 한일 간 역사문제에 대해 피해를 당한 민족이 입은 상처는 100년간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면서 일본은 과거 잘못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함께 부도덕한 언행을 삼가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는 현 아베 신조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피해국에 대한 일본 측의 성의 있는 답변을 촉구하면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당시 아베가 발표한 담화에서는 결코 이러한 내용의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 진정한 사과 보다는 오히려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관계를 통해 일본의 자긍심과 군국주의 부활을 위해 나가겠다는 의지만 보였다. 한일 지식인들과 함께 미국 등 전 세계 학자들이 일본의 과거사 인정을 촉구하며 진정어린 태도변화를 축구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이들은 지난 2년 전 공동성명을 통해 일본은 평화주의를 적극 내세우며 미래로 가자는 논리를 펴지만 잘못된 과거는 결코 은폐될 수 없다며 이를 인정하고 진정어린 반성을 할 때 일본은 과거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아베는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자국의 군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끝까지 덮으려 하고 있다.


피해 생존자 할머니들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끝내 보고야 말겠다며 채 눈을 못 감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일본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명예회복과 일본정부의 사과 및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미 연방법원에 제기해 놓고 있는 상태다.

이 역사적 만행에 미 국무부도 ‘끔찍하고 흉악한 인권침해’ 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며 아베 총리가 지난 미국 방문시 상, 하원 합동연설에서 군위안부 강제 동원사실을 시인하지 않은 점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일본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는 유네스코가 이번에 공개한 세계기록유산에도 위안부 기록물이 등재되지 못한 사실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함께 제출된 조선왕실의 어보와 어책,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조선통신사 기록물은 다 채택됐는데 유독 위안부 기록물만이 등재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 배경에는 유네스코에 엄청난 자금을 후원하고 있는 일본의 강력한 로비력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이 강제위안부 동원으로 당한 고통과 피해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목표만을 위해 나간다고 국제사회의 강국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국제사회에 기여만 하고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일본은 왜 독일의 빌리 브란트 전 총리가 과거에 독일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무릎을 꿇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는지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한다.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의 홀로코스트 현장을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진정어린 사죄를 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만천하에 보였다. 이야말로 진정한 강국의 지도자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제 위안부 생존자는 37명밖에 남지 않았다. 일본은 이제라도 몇 명 안남은 생존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달래주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이들의 한을 보듬어주지 않고는 결코 일본은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일본이 한국에 자행한 역사적 만행은 돈으로 감춰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한 인간의 소중한 권리와 생명을 짓밟은 과오에 대한 인정과 진정어린 사과가 있어야만 덮어질 수 있다.

영국과 불란서는 100년 전쟁, 나폴레옹 전투 등 숱한 전쟁을 거치면서 쌓인 앙금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이제 상호 공존, 협력의 관계를 열어가고 있다. 일본도 임진왜란, 한일 강제병합 등 한국에 자행한 역사적 과오를 정확히 인식, 이제라도 상호 존중하며 협력하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일본이 하루빨리 자신들의 잘못된 위안부 역사를 인정하고 진정한 사과가 선행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때까지 위안부 기림비와 평화의 소녀상 건립, 학술대회 개최 등 진실을 알리려는 미주한인들의 노력은 결코 멈춰지지 않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여주영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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