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의 계절

2017-10-21 (토)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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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았다. 조석으로 떨어지는 온도는 옷깃을 여미게 하고 태풍, 홍수에다 총기난사로 수백 명의 인명피해에 이어 산불로 아수라장이 된 온통 세상이 뒤숭숭한 때다. 차분히 앉아독서를 할 게재가 안 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한국에서는‘ TV 안 보기 시민모임’이 발족을 해서 가족, 책, 운동과 가깝게 해주는 캠페인을 전개했었다. 어찌나 사람들이 책들을 안읽고 TV나 다른 매체에만 모든 시간을 뺏기는 생활에 빠져 있으면 이런 심각한 현실을 탈피하고자 모든시민들이 나서서 강구책을 동원하고 또 계도하는데 전력을 다했을까하는 생각에 미치다보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의학협회, 소아학회, 공중 보건협회 등 미국 의학보건 단체 10곳은,“인간이 깨어나서 하는 가장 정지된 행동이 가만히 앉아 TV를 보는것” 이라고 강조, 사람을 수동화시켜 주체적 개인으로 설 수 있는 사고 능력을 마비시키고, 뇌와 몸을움직이려 하지 않은 채 쏟아지는 전파의 흐름에 그저 내 맡길 뿐 이라고 그 위험성을 지적, 경고하고 있는지 오래이다.


향엄(香嚴. 898) 선사의 일화를소개하면서 20세기 전반 우리나라최고의 독서가로 불렸던 최남선 선생께서 이렇게 말씀 했다고 하는데“내가 숱한 책들을 여러 수레 분만큼 읽고 난 결론은 하나다. 그것은남이 쓴 책은 절대로 읽을 필요가없다는 것이다.”라고 갈파 하였는데,그렇다면, 이제 향엄 선사의 일화를들을 차례다.

향엄 선사는 9세기 때 스님인데,하루는 스승 되시는 ‘위산’이 향엄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전부 듣고 본 것뿐이다.

지식에 대해선 묻지 않겠다. 그대가태어나기 전, 동과 서를 구별하지못 했을 때의 그대의 모습을 말해보라”이에 향엄은 대답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한참 있다가 특유의 지식과 말 재주를 동원하여 몇 마디했으나 모두가 엉터리였다. 향엄은마침내 스승에게 도를 일러주실 것을 청하니, 위산이 말하기를,“ 내가말하면 옳지 않다. 스스로가 일러야그대의 안목 이니라.” 하였다.

이때 향엄은 방으로 돌아와 모든서적을 두루 뒤졌으나 한마디로 대답에 맞는 말이 없었다.

그 길로 그는 서적을 몽땅 태워버렸다. 책을 태우는 것을 보고 달려 온 학인(學人)이 자기에게 책을달라고 하자 향엄이 이르기를, “내가 평생 동안 이것 때문에 피해를입었는데 그대가 또 피해자가 되려는 가?” 하였다고 하는 일화이다.

평생을 독서에 심취해서 배움의길을 가신 분들도 얼마나 삶의 도를 깨우치기가 어려웠으면 위와 같은 일화까지 전해 내려오는 가 싶다. 향엄 선사나 최남선 선생의 경지까지는 감히 비교를 할 수도 없는바이지만, 차제에 우리도 과연 나는독서를 하는 가 혹은 신문을 구독해서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알고 사는 가라고 한 번쯤은 심각하게 자문해 볼 일이다

<전태원/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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