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과 생각] 사람다운 마음

2025-07-31 (목) 07:27:10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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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의 어느 날, 뉴욕은 갑자기 화씨로 100도가 훌쩍 넘었다. 평년보다 무려 21도나 오른 온도는 도심을 거대한 찜통으로 만들었다. 그날의 체감온도는 105도,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날씨였다.

무덥고 무기력한 날, 간병일을 하는 친구는 꼭대기층 아파트를 찾았다.
그 집은 에어컨이 고장났지만, 견디며 일하다 그날은 도무지 할 수 없었다고 했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열기는 플로리다에서 경험한 한여름의 폭염보다도 더 숨이 막혔다고 했다.

미수(米壽), 나이 88세의 노인.
폭염으로 잘못될 수도 있는 상황인데, 홀로 계셨고 거동도 불편하다.
하루 종일 ‘한증막’ 같은 집에서 지내야 했던 그분에게 그날의 더위는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전날의 더위도 견디다 못해 무려 10시간을 로비에 앉아 계셨다고 했다. 놀라운 건,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는 망설임 없이 노인의 약과 워커(walker)를 챙겨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다. 사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차에 태워 이동한다는 건, 책임도 따르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걸 감내하고 더위 속에서 함께 나왔다.

시원한 거실에서 노인은 따뜻한 오트밀로 아침을 드셨고, 점심으로는 갈비와 냉면 한 그릇을 다 비우셨다고 한다. 입맛이 도는지 과일이며 간식도 잘 드셨고, 한국 영화를 보며 소리 내어 웃기도 하셨다. 그녀는 간병인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따뜻한 마음으로 노인을 구한 것이다.

일이 끝난 시간에도 선뜻 아파트로 모시지 못해 저녁까지 챙겨 드리고, 열기가 조금 사라진 밤이 되어 모셔다 드렸다고 했다.
간병인을 단지 집안일을 돕는 이로 여기고 불신하는 시선이 여전히 많은 세상이다. 돌봄 노동은 육체적인 수고를 넘어, 고독한 노인들의 마음을 읽고, 말벗이 되어주는 감정의 노동이기도 하다.

간병은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소통하는 일이며 공감하는 일이다. 친구는 진정 인간으로서 노인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며 .사람다움으로 대접했다,
고령자 돌봄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혼자서는 식사도 어려운 노인들,
지병이 있어도 스스로 약을 챙겨 먹지 못하는 그들을 위해 누군가는 마음을 써야 한다.
미국 내 한인 노인들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있다.

이민 사회에서 다른 문화와 언어의 장벽은 노인을 더욱 고립시킨다. 특히 연고도 방문자도 없이 살다 조용히 세상을 떠나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되는 일은 얼마나 슬픈 현실일까?

그날 친구는 무더위 속에서 한 생명을 구했고, 고독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노인은 느리고 어눌한 말투로 “고마워요.”라고 했는데 그 말은 분명,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의 말이었다.


인간적으로, 사람의 기본적 마음이 따뜻할 수 있다는 걸 전해주는 이야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시원한 건 에어컨 바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마음의 바람일 거라고… 우리는 그런 진심의 소리를 자주 잊는다.

폭염은 매해 찾아온다. 그보다 더한 고독과 방치는 어쩌면 사계절 내내 이어지는 재난일 것이다. 사람을 향해 마음을 쓴 친구의 작은 마음이 한 사람의 하루를 바꾸고 생을붙잡았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사람다움이란, 누군가의 외로움에 마음을 쓰는 것, 진정한 돌봄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다.
인간답다는 게 아름다움을 지키는 일이다.

<김미선/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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