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철현 고려대 안암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조철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불면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려대 안암병원 제공]
“‘갓생’을 위해서, 잠은 죽어서 평생 자니까 당장은 덜 자도 괜찮다는 이들이 있는데 나중에 큰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만난 조철현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몸을 계속 혹사시키면 신체적, 정신적으로 여러 질환을 앓게 될 위험성이 높다”며 이렇게 말했다. 갓생은 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God·갓)와 삶을 의미하는 한자어 생(生)을 합친 말로, 계획적이고 부지런한 삶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조 교수는 “멜라토닌 건강기능식품은 숙면에 효과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숙면을 돕는다는 건강기능식품이 많습니다.
“멜라토닌 건강기능식품을 먹어도 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같은 조건에서 반복 투여했을 때 동등한 효과가 나타나야 ‘약물 재현성’이 있다고 하는데, 멜라토닌 건강기능식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노년층에선 효과가 조금 있다는 연구가 있지만, 전체 연령으로 볼 땐 효과가 별로 없어요. 멜라토닌 외에 다른 물질이 섞인 제품도 많고, 섭취 후 체내 멜라토닌 농도가 일시적으로 확 올랐다가 금세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반면 의사 처방이 있어야 하는 멜라토닌 전문의약품은 수면 중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다가 새벽이 되면 서서히 감소해요. 체내 멜라토닌 분비 곡선과 거의 유사해 좀 더 효과적이죠.”
-수면장애가 다른 병에도 영향을 미칠까요.“최근 정신의학계에선 불면증을 굉장히 중요하게 봅니다. 불면증은 우울증의 여러 증상 중 하나인데, 불면증이 심한 경우엔 우울증과 수면장애를 같이 진단하라고 해요. 증상 중 하나로 보지 말고, 독립된 질환으로 여기라는 겁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유방암 같은 암이 생기거나 호르몬 분비 교란으로 내분비질환을 앓을 수 있어요. 심혈관계 질환에서 불면증으로 가장 흔히 나타나는 건 고혈압입니다.”
-밤에 잘 못 잤다면 낮잠이 도움되지 않을까요.“수면의학에선 보통 낮잠을 해롭게 봅니다. 우리 몸은 항상성 드라이브와 내인성 생체시계를 갖고 있어요. 여러 활동을 하다가 피로가 기준치를 넘어가면 피로를 풀기 위해 졸음이 오는 게 항상성 드라이브입니다. 내인성 생체시계는 24시간을 주기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둘이 맞물리면서 잠이 오는 것인데, 낮잠을 자면 이게 깨져요. 피곤해도 밤에 잠들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전날 제대로 못 잔 걸 보충하기 위해 낮잠을 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오늘 잘 잠을 당겨서 쓰는 거에요.”
-피곤해서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왜 자주 깰까요.“불면증 초기 증상은 잠들기가 어려운 것이고, 중기 증상은 잠이 들었어도 중간에 자꾸 깨는 겁니다. 원래 오전 6~7시 사이에 깨야 하는데. 불면증 중기의 원인은 다양한데, 스트레스나 긴장감 때문에 깊은 잠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음주는 자는 데 도움이 됩니까.“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면 구조가 완전히 망가집니다. 체내 대사가 진행되면서 각성 효과가 생겨 새벽에 쉽게 깨게 되니까요. 술이 깊은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에 잔 시간은 많았어도 피로는 제대로 풀리지 않게 돼요.”
-밤에도 긴장이 풀리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항불안제인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재나 항우울제를 쓰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항우울제는 즉각적인 효과는 떨어지지만 장기 복용이 필요한 사람에겐 항불안제보다 더 적합할 수 있어요. 다만 일부 수면 클리닉에서 효과가 강력한 졸피뎀을 처음부터 처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약을 먹으면 잠이 확실히 오니까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약물 의존성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가위눌림도 수면장애로 볼 수 있습니까.“가위눌림은 렘수면 중 발생하는 수면마비 현상이에요. 렘수면 때 뇌는 활발히 활동하지만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근육(수의근)은 이완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식만 먼저 깨면 가위눌림 현상이 나타나게 돼요. 간헐적으로 발생한다면 괜찮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면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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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