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은 불씨가 큰 불 된다

2017-10-23 (월) 최효섭/목사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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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 산불이 잘 나지만 금년은 기록을 깼다. 무려 열 두 곳에서 산불이 나고 있다. LA타임스는 이번 산불로 이미 1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의 부상자가 났다고 보도하였다. 주택 1,500동을 태우고 2만 명이 긴급 대파하였으며 1,000가구를 강제 대피시켰다.

한국 강원도에서도 산불이 자주 난다. 강릉의 산불은 250에이커를 태웠는데 여의도의 다섯 배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약초꾼의 담뱃불 때문에 불이 시작되었으니 사소한 부주의가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다. 교통사고도 마찬가지이다.

과속이나 전방(前方) 주시 태만이 여러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운전하면서 절대 두리번거리면 안 된다. 사소한 부주의가 목숨을 앗아간다. 몇 해 전 허드슨 강에 여객기가 불시착한 사건이 있었다. 조종사의 재빠른 기지로 여객 전원 155명이 무사하였다. 이 비행기는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하자마자 캐나다 기러기 떼와 부딪쳐 엔진이 멈춘 사고였다. 미국의 가장 큰 항공기 사고는 1960년 보스턴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역시 기러기 떼 때문에 엔진이 멈추어 추락하여 62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예수는 “네가 작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내가 큰일을 맡기겠다.”(마태복음 26:21)고 말씀하셨다. 작은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씀이다. 이스라엘에 이런 유머가 있다.


소련 벌목장에서 일하는 아주 체구가 작은 유대인이 있었다. 너무나 일을 잘 하기 때문에 보스가 물었다. “자네는 벌목을 어디서 배웠나?” “아라비아 숲에서 배웠습니다.“ ”아라비아에 무슨 숲이 있다는 말인가?“ ”제가 숲을 다 베어버려 지금은 사막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종은 체구가 작지만 작다고 얕보면 안 된다는 교훈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를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이기는 제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해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민주주의의 원칙이긴 하지만 소수를 무시한 다수의 독주 역시 민주주의는 아니다. 표결이라는 결의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표결 이전의 토의, 즉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기초이다. ‘

소리’를 무시한 표결은 이미 민주주의 정신에서 이탈한 것이다. 에디슨이 발명한 ‘전기 투표기’는 미국 의회에서 구입이 부결되었다. 부결 이유는 “의원들이 자리에 앉은 채 투표하고 계수까지 된다는 것은 편리는 하지만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듣지 못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 부결의 이유였다. 다수파가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들으면서 자기의 생각을 주장하는 인내의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이다.

예수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다.”(마태복음 7:12)고 하심으로 다수의 유혹을 경계하셨다. 영국의 저명한 건축가 길버트 스코트 씨가 설계한 대 성전 리버풀 교회가 준공되었을 때 기자가 물었다. “세계 최대의 성전이 완공된 소감이 어떻습니까?” 스코트 씨는 덤덤하게 대답하였다. “저는 젊어서 길거리에 세울 작은 전화 부스도 설계하였는데 건축물의 크기에 따라 성취의 기쁨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역시 대가는 다르다. 그에게는 작은 일에도 정성을 다 쏟는 정력과 최선의 성의가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피카소는 5분에 완성한 데상(素描)에도 최선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다수가 반드시 진리는 아니고 큰 소리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수만 많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얕은 생각 때문에 유치한 숫자 채우기 게임이 정치를 흐려놓는 것이다. 뉴저지 티터보로 비행장에 ‘터보’라는 개가 있다. 너무나 못 생겨 버려진 개인데 기러기 쫓는 제주가 있어 특채된 것이다. 사람을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최효섭/목사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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