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딱한 노인 이야기

2017-10-13 (금) 조상숙/전도유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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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7년 전 봄이었다. 얼었던 주변의 땅들은 온기에 녹기 시작하며 여름같이 더운 날씨가 며칠씩 급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하고 갑자기 추워지면서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날씨마저 중심을 못 잡고 오락가락하는 봄이었다.

어느 날 커네티컷 한인회에서 총무로 수고하던 교인 한분이 전화를 걸어 “목사님 도움이 필요하니 도와주세요”라고 절실함이 묻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그분의 말인즉슨 미국 시민권자 한 분이 한국에 있는 조카 집을 방문 하던 중에 쓰러져 반신불구가 된 채로 경희의료원에 입원 했다가 퇴원했는데 이제는 미국으로 다시 모시고 오고 싶지만 자신이 영어도 못 하고 또 쓰러진 고모도 말을 못하는 형편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하여 커네티컷 한인회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 그리고 그 해 한인회 총무 일을 맡아 보던 그 교인은 간호사 출신의 여자 목사인 내가 안성맞춤인 것 같았는지 나에게 도움을 달라는 전화를 걸어 온 것이다. 병들어 오갈 데 없는 그 처량한 노인의 속사정을 들어 보니 미국인 남편과는 사별했고 슬하에는 자식이 없다고 했다.

형제들이나 친척들은 모두 한국에 살고 있으며 그때 당시에는 몸이 몹시 허약해져서 당주사를 4번씩 맞아야 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하는데 한국에 있는 친척들은 그 노인 분을 더 이상 돌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런 전화를 받은 뒤 얼마 후에 마침내 그 조카라는 분은 영어로 번역된 편지를 들고 미국 시민권자인 그 노인을 양로원에 보내달라는 간청서까지 들고 그 분이 살던 이곳 커네티컷으로 달려 왔다.

이런 딱한 사정을 듣고 나는 속으로 “저런, 저런… 쯧쯧…. 미국서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렸지만 나도 모르게 그 의지할 데 없는 가련한 노인을 돕기 시작했다. 나는 그 조카라는 분에게 노인을 공항에서 직접 병원 응급실로 오게 하고 입원을 도왔다. 그 노인이 오자마자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입원한 뒤에 곧바로 그 병원에서 일하는 소셜워커는 그 분의 친구를 찾아 냈다.

그 친구 말에 의하면 그 분의 조카는 고모가 자식같이 여겨 결혼비용 몇 만 달러를 대주고, 뭐든지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한 사람이었는데 고모를 저렇게 버리고 간다고 투덜거렸다. 또 미국인 시누이도 찾아냈다.

그 시누이는 올케가 한국 조카식구들에게 평생을 몸 바쳐 잘해주고 본인의 자식은 푸대접을 했노라 섭섭함을 토해냈다. 늙고 힘없는 이 여인은 한국에 살던 조카만 바라보고 자신의 노후를 준비한 듯 했다.

<조상숙/전도유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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