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당뇨환자
2017-09-30 (토)
윤혜영/병원근무·티넥
“하나님이 주신 육신인데 죽을 때 온전히 가지고 갈랍니다.”지난해부터 다리 통증으로 빈번하게 병원을 드나들던 그녀는 평생 그를 괴롭혀 온 당뇨로 발을 잘라야 한다는 의사의 지시를 들으며 단호히 거절했다.
한국에 살 때 어느 여학교 교장을 했었다는 그녀의 의식 세계 속에는 자신이 불구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도 몰랐다. 될 수 있으면 빠른 시간 안에 오직 한 가지 방법인 발 절단의 결단을 본인이 이렇게 거절하니 의사로서는 도리가 없다. 오른쪽 엄지와 검지 중지까지 새까맣게 변색된 발가락을 내려다보며 이봉림씨는 확인하듯 말했다.
“얼마 전에 신었던 검정양말이 젖으면서 발가락에 물이 들은 게 확실해요. 내가 기운이 없어 잘 닦지 못해서 그렇지 괜찮아질 거에요.” “그런데 자꾸 아프시잖아요?” “워낙에 다리가 잘 아파요” 본인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엉뚱한 이유를 대고 단호하게 동의를 구한다. 더 이상 담당 의사로서는 강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입원 수술을 권유하는 의료진을 뿌리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이봉림씨를 다시 본 것은 그로부터 4-5개월후, 응급실이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과 체념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단아한 품위 속에 자신의 육신 한 조각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던 의지마저 상실해버린 듯 했다.
“이제는 다리를 잘라야 한답니다. 잘라내도 아프고 그냥 둬도 아프니 하라는 대로 해야 되나 봐요. 안 먹으면 죽을까 해서 문 닫아걸고 며칠을 굶으려니 정신만 혼미해지고 거러지처럼 먹을 것만 눈앞에 아른거리니… 그래도 그냥 놔뒀었으면 됐을 텐데 아이한테 들켜서 여기 또 끌려 왔어요”진통제도 듣지 않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끔찍한 고통은 제발 그냥 죽게 해달라는 그녀의 염원조차 무디게 한 듯 했다.
“그래도 소중한 목숨을 어떻게 굶어서 끊겠어요?” 적당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위로랍시고 말을 하지만 내가 제대로 말을 했는지 순간적으로 당황스럽다. 발바닥과 발 등성을 넘어 복숭아뼈 부근까지 검게 변색이 되어 시트를 덮은 발은 이미 썩어가는 과정이 빠르게 진행됨을 알리듯 고약한 냄새까지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하나님이 주신 육신을 온전히 가지고 살다 죽겠다는 염원조차 거부된 채 86세에 당뇨로 인한 합병증으로 무릎뼈 바로 아래를 절단한 이봉림씨는 아직 마취가 깨지 않아 혼미한 상태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지가 멀쩡한 채로 죽을 수 있는 것도 복인 가 봐요” 잘리우는 고통이 썩어 들어가는 고통보다 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환자 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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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영/병원근무·티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