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폐닭도 여자이더라?

2017-09-23 (토) 원혜경/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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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캠프로 여름을 반납하며 열심히 일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던 나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머리도 식힐 겸 보스턴에서 한 시간 떨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고 있는 신동성 화백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에 지인과 함께 반짝 1박2일의 여행을 떠났다. 길 떠남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만들고 그곳에서 나눌 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온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남자는 나이가 들어가면 집으로 가정적인 남편이 되어가고 여자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친구 따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는데 이것은 정말 재미있는 현실인 것 같다.

달리는 차 안에서 어울릴 듯 어울리지 않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거친 강냉이를 한 주먹 가득 담아 중독성 있는 손놀림으로 계속 입에 넣으며 달려 갔다. 심심할 겨를도 없이 5시간30분이 지나서 도착했을 때 하늘은 어스름 날이 저물었고 도착하였을 때 제일 먼저 우르르 달려와 반겨 준 것은 100여 마리의 닭들이었다. 우리는 그곳의 주인장이신 신광성 화백의 반가운 인사를 받으며 정성스럽게 준비한 오골계 찜을 먹고 미리 준비된 캠프파이어 장소로 이동을 하였다. 캄캄한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빛이 났고 이런저런 자유스러운 이야기로 꽃을 피워나갔다. 이야기 꽃 중에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짠한 감동이 있었던 것은 신화백이 키우는 폐닭 이야기였다. 키우고 있던 닭 중에 알을 잘 낳던 암탉이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다시는 알을 낳지 못하는 폐닭이 되었단다. 그런데 폐닭은 알을 낳지 못하게 된 그 순간부터 모이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알을 품고 있는 듯이 앉아있었단다. 아마도 갱년기 우울증을 앓게 된듯하다. 신화백은 계속 신경이 쓰이고 안쓰러워서 달걀 10개를 살그머니 품에 밀어 넣어주었는데 그 폐닭은 그 후로 움직이지도 않고 열심히 알을 품었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서 폐닭 품에서 알을 깨고 아기병아리가 삐약거리며 나오기 시작하였단다. 아기병아리가 나온 후부터 폐닭은 활기를 띄우며 먹이를 잡아서 병아리 입에 넣어주며 부지런히 움직였고 그래서 그런지 깃털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며 생기를 되찾았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다음 날 아침에 병아리 10마리를 이끌고 먹이를 찾아 다니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가 있었다.

여자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피할 수 없는 갱년기가 찾아오면 의욕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많이 있다. 때론 우울해지기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변해지기도 하는데 폐닭이 병아리로 인해 삶의 의욕을 찾은 것처럼 우리 삶의 병아리를 찾는다면 훨씬 갱년기를 멋지게 이겨내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이번 여행에서는 폐닭에게서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었던 시간이었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청춘인 지금 이 순간에 꼭 필요했던 멋진 여행이었다.

<원혜경/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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