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상 낙원 bora bora island

2017-09-23 (토) 최원국/비영리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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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한국 영화사상 처음으로 대형 스크린인 시네마스코프 화면에 입체 음향이 나오는 영화를 선전 했다. 시원한 바다의 이국적인 풍경과 아름답고 달콤한 음악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매스컴을 통하여 사람들을 유혹했다. 그 영화가 1958년에 제작한 유명한 뮤지컬 영화 ‘남태평양(South pacific)’이다.

남태평양에는 프랑스영 폴리네시아 제도의 중심지인 타히티 섬과 북서쪽에 위치한 태평양의 진주라는 별명의 섬, 하얀 백사장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보라 보라(bora bora)섬이 있다. 세계 제2차 대전 태평양 전쟁 당시 그 섬은 전쟁터였다. 영화 남태평양은 전쟁중에 일어났던 남녀의 로맨스를 뮤지컬로 만든 영화로 젊은 날 쓰라린 사연을 안고 프랑스에서 이주해온 로사노 브릿지 농장주와 전선 종군 간호장교로 와 있는 미녀 미찌게이너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때 주인공이 애절하게 부르는 사랑의 노래 ‘발리 하이(Bali Hai)’는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게 하는 노래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앞에 두고 불렀던 구혼의 노래 ‘어느 황홀한 저녁(Some Enchanted Evening)’은 애잔하다 못해 슬프기까지 했다. 두 남녀가 만날 때마다 배경 음악으로 반복되는 영화의 주제곡이기도 했다. 스크린에 펼쳐지는 감미로운 음악과 환상적인 경치는 너무도 낭만적이어서 영화를 보는 내내 황홀해 했었다. 은퇴 후 어느 해 봄, 나는 봉사기관에서 개설한 시니어 스케치 교실에 참여했다. 초등학교 시절 도화지에 크레용으로만 그려 봤던 시니어 화가 지망생들이 모였다. 눈이 어두워 돋보기로 보아야 선이 보이고 거칠고 뭉툭해진 손마디, 몇 번이고 다시 지웠다 그려야만 하는 서툰 솜씨들이었다. 그래도 의욕만큼은 젊은 학생들 못지않은 듯 모두들 뜨거운 열정으로 더위조차 잊은 채 그림을 그렸다.

용기 있는 시니어들이 자랑스러보였다.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로 겨울에 작품 전시회를 갖기로 했다. 내 삶에서 특히 은퇴한 지금 전시회 같은 일이 절대로 생길 수 없는 평범하게 살아온 삶이었기에 걱정 속에서도 한쪽에서는 가슴도 설레었다. 용기를 냈다. 마음이 바빠지면서 어떤 작품을 선정해야 좋을지 즐거운 고뇌가 시작되었다.

유명한 화가들도 작품선정에 고심했을까? 그래서일까? 아들 집 벽에 넓은 바다 가운데 수상 방가로가 있고 뒤에는 산이 있는 멋있는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보아 넘겼던 사진이었다. 아들의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이었다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로 영화에서 본 동경의 섬, 몇 십년이 지났건만 내 기억속에는 아직도 지상낙원으로 기억되고 있는 ‘bora bora’섬이었다. 반가웠다. 나는 그 섬을 그려 작품 전시회에 출품하기로 했다.

아들 내외도 미래의 행복한 가정을 꿈꾸면서 황홀한 신혼여행을 보냈을 섬이라는 생각하니 더 친근감이 들었다. 그들도 영화속의 주인공들 같이 백사장을 거닐면서 사랑의 노래를 불렀으리라,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폴 고갱은 말년에 보라 보라 섬과 인근의 타이티 섬에서 생활하며 유명한 작품들을 남겼다.

나는 그의 많은 작품들을 상상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나도 정성들여 열심히 그려보았지만 꿈이었을 뿐이다. 물결을 그릴 때는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애절하게 가슴을 울리게 하는 남녀 주인공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환청과 환상속에서 그려 보았다.

보람과 성취감속에 나의 어설픈 첫 작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동경의 섬을 그리던 그 시간이 내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들이었다.

그 섬도 희로애락의 삶이 있었기에 흰 백사장은 순결해 보였고 파도소리는 아름다운 노래 소리로 들렸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지상낙원으로 생각했던 그 섬이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기대감에 나를 도전하게 만들고 있다.

<최원국/비영리기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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