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터에서’와 ‘82년생 김지영’

2017-09-22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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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한국 출판계에서 가장 뜨거운김훈의‘ 공터에서’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장편소설을 최근에 동시에읽었다.

김훈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그의 손글씨를 컴퓨터 폰트로 개발하여 11월무료배포할 정도로 잘 알려진 작가다.

‘공터에서’는 1920년부터 80년대까지의 마씨 집안 가족사다. 일제하, 피난시절, 군부독재, 베트남 전쟁, 언론통폐합 등 시대를 아우르며 고통스럽고서글픈 삶이 담겨있다.


아버지 마동수는 젊은 날 만주땅을 떠돌며 독립운동 언저리에 있었고6.26 전쟁 피난시절 피묻은 군복 빨래를 하다가 이도순을 만나 두아들을 낳고 사나 평생을 집밖으로 떠돌며 산다. 큰아들 장세는 베트남 전쟁참전후 아버지의 흔적이 싫어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남태평양섬을 떠돌며 산다. 차남 차세는 경제전문지에취직 한 지 3개월만에 잘리고 오토바이 배달직,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늘살아내기 위해 허덕허덕 애를 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면서 나도 그러네, 우리네이민의 삶도 그러네 하게 된다. 나름열심히 살려고 하나 늘 당하고 치이며 살고 크게 성공하지도 못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바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주인공들이 나대신 세상 한풀이를 받아낸 것 같은 느낌이 온다.

또 하나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맘충’이란 말을 널리, 해외에까지 보급시킨 책이다. 이 책은 한 달 전 한국회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육아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은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 충(蟲)으로‘ 맘충’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켜 여성혐오현상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다.

주인공 김지영은 돌 지난 딸을 태운 유모차를 밀며 1,500원짜리 커피한 잔을 들고 동네 공원에 갔다가 옆벤치의 직장인들이 커피를 마시면서‘맘충 팔자가 상팔자’라는 조롱을 받는다. 그 순간 뜨거운 커피를 쏟으며도망가고 급기야 정신이 살짝 돌아버린다. 그러면서 소설은 매도당하는 전업주부, 경력단절녀, 남녀임금 격차, 직장내 성희롱, 여성 재취업 등을 살짝살짝 건드리며 1999년 한국에 남녀차별 금지법안이 제정되었어도 여전히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것을말한다.

그러나 냉정하게 김지영의 삶을 돌아보자. 대학시절 부모집에 살며 학자금 대출 안받았고 일주일에 몇 시간만 아르바이트 하면서 등산동아리, 영화 동아리 등을 기웃거리며 대학시절을 즐겼고 연애 또한 열심히 했다. 졸업후 바로 작은 홍보대행사에 취업도했다. 이만하면 등록금과 용돈 마련에 잠 못자고 일하거나 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둬야 하고 고시원에서 컵밥먹으려 취업준비 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 비해 호사한 삶이다. 또 김지영에게는 기댈 친정이 있고 자기편인남편도 있다.

그런데 겨우‘ 맘충’ 한마디에 거꾸러지는 것은 냉정한 현실, 가시밭길을 전혀 걸어보지 않다가 넘어져서땅의 붉은 꽃물이 무릎에 든 것을 상처로 보고 우는 격이다. 그녀는 왜 자신을 조롱하는 남자들에게“ 그래, 맘충 남편도 능력 있어야 하는 거야. 당신들은 그런 능력 있어?” 라고 쏘아주지 못했을까? 한편, 무대가 미국이라고 해보라. 과연 나를 괜히 트집 잡고조롱하는 타인종에게 할 말 다 할 수있을까? 말대꾸 잘 못하다가 칼 맞고총 들이대면 어쩌냐 하고 미리부터피하고 도망가지 않을까?세상은 날카롭고 잔인하다. 한인들은 미국에 이민 와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집도 장만못했고 아직 자녀교육도 끝나지 않았다. 고생할 날이 요원하니 힘이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질척거리고 갈팡질팡하는 삶이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삶은 무섭고도 두렵다. 달아나려고 해도 달아날 곳도 없다. 우리가 사는 곳에 애정을 지녀야 한다. 서울의 날씨보다 뉴욕의 날씨가 내 삶에 끼치는 영향이더 크다.

공터에 서 있건, 맘충 소리를 듣건의연한 자세로 앞으로 나아가자.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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