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번호 매기는 사회

2017-09-22 (금)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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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번호 매기는 사회(thenumbering society)가 된 지는 이미오래다. 한국 사회는 강남 학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아파트, 유치원, 그리고 전철과 버스노선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게 서열화(序列化)되어 있어서‘번호 매기는 사회’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한국인에게 등급 매기기(ranking)는 일상의 감정노동이 되었다. 한국인에게 등급 매기기가 없으면 살 맛을 잃은 듯 보인다.

며칠 전 중요 일간지가 서울 강서구에서 일어난 특수학교(장애자를위한 공립학교) 설립 반대에 대한 주민 공청회 과정을 특집으로 보도하고 있다. 우리는 그 보도를 접하고 번호 매기는 한국 사회의 집단이기주의적 현상을 실감했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의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그 지역에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하락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학군이 나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되는 국립한방의료원 유치는 대 환영이지만 특수학교 설립은 결사반대라는 것이다.


한국의 공동체 지수(공동체 생활을 통해 행복과 정서적 안정을 누리는 지수)는 OECD 34개 국가 중 33위다. 서열화 된 사회는 사회적 단절을 일으키고, 낮은 공동체 지수를 지닌 국민성을 형성한다. 이 뿐만 아니다. 번호 매기는 사회는 집단이기주의와 왜곡된 주인의식을 낳아 지역간, 세대 간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번호 매기는 사회에서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관점에서 사람을 바라본다. 지난 6일계획된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설립토론회’가 맥없이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가. 최고의 학군을 가진 부자 동네로 만들기 위한 일부 강서구 주민의 지역 공리주의 때문이다.

번호 매기는 공리주의 사회에서는대의(大義)를 결정하기 위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선호한다. 때로는 지역내의 여론 조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열화 된 사회 속에서는 대의라는 명분 아래 인간의 존엄성과가치의 깊은 사유가 함몰되고 무시될개연성이 높다.

강서구 비대위 주민들의 주장을 들어보자“. 특수학교가 한 곳도 없는 자치구가 8개나 되는데 왜 강서구에 두개를 세우냐. 동네에 장애인복지관이나 노인정 등 복지시설이 이미 많다.

아파트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도 많은데 그런 시설이 또 들어오면 어쩌란 말이냐. 강서구는 허준이 태어난곳으로 주민 비대위는 특수학교보다는 국립한방병원 유치를 희망한다“.

첫째는 강서구의 부동산 가격이하락할까봐, 둘째는 강서구가 다른구보다 열등한 학군이 될까봐 강서구주민들은 특수학교 설립을 거세게 반대하는 것이다.

‘일등만이 최고다.’라는 우월의식이지배하는 서열화가 몸에 밴 사회에선 장애인 같은 소수자가 설 땅이 없다. 그런 사회에선 평범하게 생겼다는 사실도 굴욕처럼 느껴질 것이고,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회가아니라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을 과대하게 포장하는 위선의 삶을 살기 십상이다.

겸허함의 대명사였던 다윗의 변질은 그가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주로등극한 후 실시한 인구조사 때 나타났다. 하나님이 금한 인구조사로 인해 다윗의 겸손과 지혜로움은 여리고성처럼 무너져 내렸고, 자기 극대화의 욕망은 공리주의를 앞세운 서열화 작업으로 절정에 달했다. 다윗의위대함은 안타깝게도 성공 뒤에 바로 와해되기 시작한 것이다. 번호 매기는 관료적(官僚的) 욕망 때문에-

<김창만/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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