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빵 굽는 냄새”

2017-09-19 (화) 나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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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체스터 칼럼

인천 공항에 도착해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거장 공기속에 특유의 냄새가 있다. 매연이라 생각되지만 내가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이제는 반가운 친정에 간다는 여행 일정을 마무리하는 마침표 같아 좋다.

오랜만에 방문한 친정집에는그리웠던 집 냄새가 비와 매미와이른 귀뚜라미 소리가 정겨운 모기향과 함께 있다.

올해는 아들과 서울에서 놀자고 한국을 방문했다. 아침에 나가 여기저기 관광하고 저녁에 친정으로 돌아가면 예전에 항상맡았던 밥 냄새가 앞치마 두른엄마의 모습과 함께 집안에 가득했다.


이번에는 그 밥 냄새에 빵 굽는 냄새가 더해졌다. 할머니 빵이맛있다는 손자의 말에 친정엄마는 매일 저녁 식빵을 구웠다.

미국의 내 집으로 돌아와 친구가 주고 간 낡은 제빵기를 꺼냈다. 생각난 김에 앞치마를 두르고 친정엄마의 요리법으로 빵을구웠다. 시차 때문에 일찍 잠이든 아들이 눈이 빨개져서 일어났다.

“ 엄마, 빵 냄새 때문에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실 나도그랬다.

카스텔라를 만들던 젊은 친정엄마의 나이를 이젠 내가 차지했다. 그리고 식빵 만드는 친정엄마가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 모습으로 아들의 기억에 심어진다.

자기 키만해진 손자를 붙잡고영어 반 한국어 반 섞어가면서수십 년간 나에게 했던 식탁에서의 이야기를 일주일 안에 속성으로 하시려는 친정아버지의 모습도 빵 냄새와 함께 그립다.

도심공항 터미널에서 인사하고헤어지는 그 뒷모습을 보고 눈물떨어트리기 싫어서 공항버스 안에서 얼른 눈을 감는다.

하지만 버스 창문으로 비치는햇살에 나는 여전히 냄새가 느껴진다.


그렇게 다시 13시간 비행기 타고 입국을 위해서 시민권자 통로에 선다. 웃음기 없는 공무원이입국 도장을 찍는다. 미국이다. 집이다. 싸늘한 공항 냄새와 버무려진 영어가 친근하다. 마음이 시원섭섭하다.

집에 와 친정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열어보니 친정 냄새가 같이 딸려왔다. 힘드시니 조금만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친정엄마는 조그만 봉지에 반찬을 꾹꾹눌러 담으셨다.

아들이 밥을 먹다 또 울먹울먹해진다. 멸치마다 바다 냄새대신 엄마 냄새가 난다.

한국에서 남산으로 박물관으로 놀이동산으로 관광의 수많은기억을 만들었는데, 냄새 앞에서다 사라지고 친정집 모습만 떠오른다.

벌써 2주가 되어가는데 아들은 오늘 또 뜬금없이 말한다“. 엄마! 엄마 차에서 할아버지 자동차 냄새가 나요. 신기해요.”이제는 성인이라서 서로의 삶의 방식이 있기에 가끔 서운하기도 하지만 반겨주는 친정집과 추억을 품고 있는 고향의 냄새가여전히 그곳에 있음이 그저 감사하다. 부엌에서 빵이 구워지고있다.

내 마음은 잠시 친정집 부엌으로 간다. 우리집에서 내가 만든 식빵 굽는 냄새를 맡게 해드리고 싶은데…미국과 한국은 참멀다.

“엄마, 아빠 내년에 또 뵐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세요. 사랑해요.”

<나리/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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