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등칸이 없으니까!

2017-09-16 (토)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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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큰 미덕은 무엇일까. 미덕(美德)이라면 아름다운 덕이다. 아름다운 덕은 자신과 이웃을 아름답게 한다. 여러 가지 미덕이 있겠다. 그 중에서 한 가지를 든다면 겸손을 꼽고 싶다.

겸손(謙遜)은 영어론 humbleness, humility, meekness, modesty, self-abasement 등으로 쓰인다. 여러 가지의 단어지만 비슷한 뜻이다. 이 중에서 휴밀리티(humility)는 라틴어 humilis 에서 유래됐다. humilis는 ‘낮은’이란 뜻과 ‘땅바닥에 가까운’이란 뜻을 갖고 있다. 라틴어에서 땅은 humus다. 풀이하면 자신을 낮추는 자세가 겸손이다.

어디까지 낮추나. 땅바닥에 자신의 몸이 닿도록 낮추는 자세다. 프랑스 출신의 종교개혁가요 신학자 중에 존 칼빈이 있다. 프랑스어로 장 칼벵이라 불린다. 그는 1536년에 ‘기독교강요’를 출간했다. 이 책은 지금도 많은 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그는 마르틴 루터와 츠빙글리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마무리한 인물로 꼽힌다. 장로교의 뿌리라고 불리는 존 칼빈(1509-1564). 방대한 그의 신학사상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이렇다.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다. 신앙의 진정한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칼빈은 또 주장한다. 진정한 기독교신학의 토대는 겸손에 있다고. 그러며 신앙의 덕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 말한다. 그리고 천사를 마귀로 만드는 건 교만이라 한다.

한국의 조만식선생(1883-1950). 독립운동가, 종교인, 교육자, 언론인, 정치인이었다. 한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교사와 교장을 역임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등으로 투옥당하기도 했다. 조선의 간디라 불렸던 그다. YMCA 평양지회를 설립했고 신간회 등을 주도했다.

1950년 공산당에 의해 피살됐다. 조만식선생의 오산학교 교편 시절. 그의 제자 중엔 주기철이 있었다. 주기철이 나중에 목사가 된 후 산정현교회 담임으로 있을 때다. 조만식은 교회 수석장로였다. 하루는 주일예배에 조 장로가 지각을 했다. 주 목사는 조장로에게 앉지 말고 뒤에 서서 예배를 드리라 했다. 조 장로는 그대로 따랐다. 겸손, 이런 게 겸손이 아닐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사람. 어떻게 세상사 모든 일이 자신의 마음에 들겠나. 조금은 양보할 줄 아는 사람. 상대방을 이해할 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사람. 자신이 좀 무시당한다 해도 조만식선생 같이 자신의 잘못을 알고 따르는 사람. 트러블메이커가 아닌 분위기 메이커가 겸손의 미덕자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아버지를 가장이라 부른다. 한 집안의 장이다. 가장의 겸손은 집안을 화평하게 한다. 겸손은 부드러움이다. 자녀를 보면 그 부모도 알 수 있다. 부드러운 부모 밑에서 부드러운 자녀가 자라난다. 부부사이도 마찬가지. 남편이 공손히 아내를 대할 때, 아내도 공손해진다. 부부사이의 겸손은 가족을 화평케 만든다. 우리들 마음속에 겸손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교만은 잡초와 같아 우리네 마음과 이웃의 정원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린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게 겸손의 미덕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상황을 모르면 안 된다. 자세를 낮추되 비굴하지 말고 용기 있게 겸손을 행동으로 옮기는 자. 진정 겸손한자다. 슈바이처박사는 “나는 오직 한 가지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

진실로 행복한 사람은 섬기는 법을 갈구하여 발견한 사람”이라고. 추수 때다. 잘 익은 곡식은 고개를 숙인다. 허영의 특징은 교만이다. 웃음 속에 여유와 내공(內空)이 키워진다.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노자의 말이다.

슈바이처 박사가 아프리카 선교를 마치고 독일 고향으로 돌아 올 때다. 그가 탄 기차가 역에 도착했다. 환영 나온 많은 사람들이 1등 칸 앞에서 기다렸다. 그는 내리지 않았다. 2등 칸 앞으로 갔다. 그는 내리지 않았다. 3등 칸에서 그는 내렸다. 사람들이 물었다. “왜 3등 칸에서 내리냐”고. 슈바이처박사는 말한다. “4등 칸이 없으니까!”

<김명욱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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