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는 것과 정의 (正義)

2017-09-15 (금)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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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네티컷 칼럼

정의에 관한 문제는 정치사회 철학의 핵심이다. 정치 사상가들이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정의란 무엇인가 혹은 어떻게 사회를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문제를 가지고 힘겨운 씨름을 하고있다. 정의에 관한 무수한 책들이 출판되었고 그 중에는 소위 베스트 셀러가 된 책도 많이 있지만, 우리가사는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을 별로 받을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사회에서는 정의의 핵심을 공평 (Fair ness)으로 보고 있다. 자기가받을 댓가와 대우를 정당하게 받는것을 말한다. 이런 정의의 핵심은 받는 것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가난한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일자리가 없거나 정상적으로 일을 할수 없는 사람들이 사회로 부터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가, 인간의 품위를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적 지원을 제대로 받는가 하는 것들이다. 받는 것이 복지 정책의 핵심이 된 것이다.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사회는 항상 불공평하다고 느끼게 되어 있다. 또 정치인들은 다음 선거에자기를 지지해주면 더 많은 것을 받게해주겠다는 허황한 약속으로 가난하고 눌린 사람들의 처지를 악용하는사례를 우리는 많이 보아왔다.


이런 현상에 대한 반감 또한 우리미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땀흘려 일한 댓가를 세금이라는 이름으로 떼어다가,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는사람들에게 퍼주는 것에 대한 불만은 날이 갈 수록 증폭되고, 이로 인한 정부와 복지 정책에 대한 불신이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느낌이다.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자기가 받을 댓가와 대우를 정당하게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않다고 느꼈던 이 사람들이 지난대통령 선거의 결정적인 변수가 된것이 아니었을까?그러나 정의의 핵심이 과연 받는것 일까? 정의의 커다란 네가지 원칙을 살펴보면“ 주는 것”이 그 중에하나인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줄 수있는 한 주라는 것 (Give what youcan give) 이다. 받는 것에 정의의 촛점을 맞추는 경우, 우리 사회는 주고받는 연속상에서 이루어 지는 정의로운 사회의 꿈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정의의 원칙이라는 깨달음이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정신이되어야 할 것이다.

가까이 지내는 동료 교수가 지난주에 갑자기 자취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를 가도 나에게는 소식을 남기고 가는 사람인데, 소식도 연락도없었다. 강의실에 휴강한다는 표지도붙어있지 않았다. 당황한 나는 이리저리 연락을 시도 했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주말과 9/11 월요일을 불안하게 지내고, 화요일 오후 늦은 강의를 하고 있는데 강의실 뒷문에 슬며시 나타난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플로리다에 갔다 왔다는 것 이다. 태풍 이재민 구호품을 한 트럭 사서 싣고 탬파에 가서 자원봉사자로일하다 왔다고 했다.

물에 잠긴 곳에서 일하다가 전화기를 물에 빠뜨려 연락을 할 수 없었고, 가기 전에 작은 쪽지를 내 사무실 문에 붙여 놓았다고 했다. 듣고보니 문위에 ‘플로리다’라고 쓴 작은 쪽지가 붙어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어이가 없었지만 반가웠다. 이런사람이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받기보다는 주기를 우선 하는 이런 사람들이 정의를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이 분은 9/11 때에도 자원봉사자로들어가서 많은 일을 했고 아직도 그후유증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다. 줄수 있는 것을 기꺼이 주는 이런 사람이 넘치는 사회를 그려 보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는 이 정신이 바로 정의로운사회를 이루는 참된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태풍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작은 체크를 써보냈다.

<김갑헌/맨체스터대 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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